'잃어버린 나'를 찾아서…도심 청정도량 '길상사'

  • 입력 2000년 7월 27일 19시 17분


◇#1. 10분만의 탈속?

도시 안에서 도시를 떠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잠시라도.

서울시청 앞에서 출발하면 10여분만에 도착하는 곳이 삼각산 자락에 자리잡은 청정도량 길상사.

‘고뇌하는 사람들 가운데 있으면서도 고뇌에서 벗어나라. 마을이나 숲이나 골짜기나 평지나 깨달음을 얻은 이가 사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라도 그곳은 즐겁다.’

절 일주문 옆에 새겨져있는 법구경의 한 문장처럼 고뇌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일상의 번잡함에서 잠시 벗어나 탈속의 끝자락 느낌이라도 얻고 싶다면 한번쯤 찾아볼 만한 곳이다.

도심의 한여름열기를 헤치고 찾아온길상사는 고풍이 깃든 한옥건물들과 삼각산 계곡에서 내려오는 소슬바람 때문인지 첩첩산중 고찰 못지않을만큼 청량했다.

이 곳의 본래 이름은 밀실정치의 산실로 일컬어졌던 요정 대원각. 절살림을 맡고 있는 덕조스님은 “당시 연회장으로 쓰이던 건물 40여동 가운데 30여동을 법당과 선방, 요사채로 바꾼뒤 남은 건물 10여동은 없앴다”고 말했다. 대신 그 자리는 스님들이 전국을 돌며 가져다 심은 초롱꽃 금낭화 등 우리 꽃들이 메우고 있었다.

◇#2. 죽비소리 그리고 화두

‘탁 탁 탁.’ 극락전 옆 시민선방에 울리는 선승의 장군죽비소리. 이 소리와 함께 머리자르지 않은 선객들은 일제히 가부좌를 틀고 면벽에 돌입. 선방 밖에서 들려오는 매미소리 바람소리만이 선방 안의 고요를 흐트린다. 다시 죽비소리가 울리기 전까지 50분 동안은 하늘이 무너져도 한마디 화두만이 세상의 전부다. ‘나는 누구인가’.

길상사는 이처럼 산 아래 속세의 사람들에게 문호를 열어 도심에서 멀리가지 않고도 명상과 삼매에 젖어들 수 있는 공간을 내준다.

대지 7000여평에 연건평 3000여평의 대가람이면서도 절에 적을 둔 스님은 10명이 채 안된다. 97년 사찰 개원식 때 법정스님의 말씀대로 ‘누구나 부담없이 드나들면서 마음의 평안과 삶은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사색의 쉼터가 바로 길상사다.

찾아오는 이가 불자이어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 명상의 공간인 침묵의 집에는 인근 수도원의 신부와 수녀들도 자주 찾는다. 그래서인지 가톨릭교신자 조각가가 만들었다는 극락전 앞 관세음보살상은 얼핏 보면 마리아상을 닮았다.

◇#3. 한달전 신청해야

시민선방은 매일 오전 5시부터 오후 9시까지 참선수행을 통해 마음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이다. 매달 50명씩 신청자를 받기 때문에 한달 앞서 신청해야 한다. 월회비는 5만원.

참선 경험이 없는 이들이라면 ‘침묵의 집’을 이용해도 좋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누구나, 당장이라도, 원하는 시간동안 앉아서 명상에 잠길 수 있다. 무료.

여름마다 설법전에서는 3박4일간 참선수련회가 열린다. 올 여름은 이미 8월 수련회까지 마감이 끝났다. 매 짝수달 셋째 일요일 오전 법정스님이 법문을 하는 법회엔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다음달에는 하안거(夏安居) 해제일인 14일 법회가 예정돼 있다.

스님들은 “굳이 선방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길상사는 경내 전체가 명상과 묵언을 위한 장소”라고 말한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삼선교)에서 내려 6번 출구로 나온 뒤 11번 마을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면 된다. 택시는 기본요금. 광화문 쪽에서는 삼청터널을 지나 북악스카이웨이 입구에서 우회전하면 길상사 팻말이 보인다. 02―3672―5945

<박윤철기자>yc97donga.com

◇도심 시민선방

■청담스님 성철스님 등이 수행했던 강북구 우이동 도선사는 이 달 초 일반인을 위한 ‘무차선원’을 개원했다.

매일 오전 9∼11시, 오후 1∼3시 주지스님이 직접 참선을 지도한다. 무료. 다음달에 2차례에 걸쳐 2박3일의 참선수련회가 열린다.

지하철 4호선 수유역에서 내려 북부경찰서쪽으로 나온 뒤 시내버스 6번이나 6―1번을 타고 종점에 내리면 사찰 셔틀버스를 탈 수 있다. 02―993―3161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는 올 초 시민을 위한 ‘봉은선원’을 열었다. 오전 4시∼오후 10시. 선방 입승스님과의 면담을 거치지만 초보자라도 입실이 가능하다. 월 회비 3만원. 지하철 2호선 삼성역에서 내려 코엑스몰쪽으로 나와 10분 정도 걸어가면 나온다. 02―516―5652

■수덕사의 서울포교원인 강남구 신사동 무불선원도 선의 대중화 생활화를 내걸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이용할 수 있으며 매주 수 목요일 오후 2시에는 참선강의도 한다. 목요일 오후 7시에 마련되는 화계사 국제선원 소속 외국인 스님들의 법문도 이색적. 월회비 3만원이지만 참선강의나 법문은 회비를 내지 않아도 들을 수 있다.

신사4거리 월드북센터 옆 삼윤빌딩 8층. 3호선 신사역에서 내려 3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찾을 수 있다. 02―541―0002∼3

선승들이 몇 년간이고 방문을 걸어 잠근 채 독방수행을 하는 무문관으로 유명한 도봉산 천축사도 시민선방을 열었다. 30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선방이 24시간 개방되며 토요일 오후 9시부터 일요일 오전 3시까지 철야정진도 열린다. 지하철 1호선과 7호선 도봉산역에서 내려 국립공원 방향으로 5분거리. 02―954―14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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