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문을 갓 들어서는 초학자(初學者)의 생각은 어디나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 ‘신선한 사람’(Freshman〓1학년)들도 ‘현명한 바보’ (Sophomore〓Sophos 현자, Moros 바보의 합성어〓2학년)에서 실제로는 더 나아가지 못하기 일쑤.
엘리트의 상징 아카몬(赤門)을 통과한 일본 도쿄대 신입생들도 마찬가지. 섣부른 독단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거나 학문의 깊은 속살을 파내지 못하고 수박 겉만 핥는 헛공부꾼이 교수들 눈에 숱하게 뜨였다. 특히 인문학을 삶의 목표로 삼은 새내기 학자들에게 올바른 ‘지’(知·Sophia) 로 향하는 지도를 알려주는 일이 시급하지 않을까….
1994년, 문화론과 인류학을 전공한 도쿄대의 두 교수가 ‘학문 연구의 갖가지 테크닉, 문제제기 방법과 인식 방법, 표현기술 등을 신입생들에 심어주자’는데 뜻을 모았다. 두 사람은 동료 교수들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기고를 받아 ‘지(知)의 기법’이라는 책을 엮었다. 책은 도쿄대 출판부에서 출간돼 문과계 1학년 필수과목인 ‘기초연습’의 부교재로 쓰였다.
얼마 지나자 놀랍게도 교문 밖에서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독자들의 호응 때문만이 아니라 ‘지식의 논리창조 방식’과 ‘지식이 실천되는 바람직한 방향’을 논해야겠다는 생각 에 두 교수는 속편 ‘지의 논리’ ‘지의 윤리’를 엮었고, 마침내 1998년 ‘지의 현장’으로 4부작의 ‘지 시리즈’가 완결됐다. 오늘날 네 권의 책은 일본에서 인문서로는 놀랍게도 100여만부가 판매되며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고,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지의 현장’을 마지막으로 완간됐다.
첫번째 책 ‘지의 기법’은 인식과 표현의 기본적 기술을 다루고, 특히 ‘반증가능성’ 개념에 따른 ‘열려있는 학문’을 역설하며 지적 독단을 배제하는 태도에 초점을 맞춘다. 둘째 권 ‘지의 논리’는 인식론 현상학 구조주의 카오스이론 등 논리적 그릇들을 소개하면서 관련도서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 셋째 권 ‘지의 윤리’는 ‘학문과 세계, 실천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생명복제에 대한 윤리적 논란이 비등하고 있는 오늘날 눈여겨볼 대목.
처음 선을 보인 넷째 권 ‘지의 현장’에서 교수들은 일본 언어 신체라는 세가지 화두를 통해 사회와 학문에서 펼쳐지는 ‘지의 최전선’을 조감한다. ‘일본’을 첫번째 문제로 등장시킨 것은, 버블경제 와해 등으로 도전을 받는 사회의 단면 위에 다양한 학문적 접근의 실제를 펼쳐낼 수 있기 때문. 저자들은 일본적 집단주의와 미국적 개인주의에 대한 가치론적 질문을 던지고, 전원의 유토피아라는 개념으로 설계된 계획도시에서 사회적 ‘피로’의 징후를 진단하며, 포르노그래피와 가요 등의 문화적 미시담론을 펼치는 등 지적 ‘필드워크’(현장작업)의 실제를 실천한다.
‘언어를 배운다’ 장은 20세기 후반부의 언어학 성과를 컴퓨터 언어, 법의 언어, 수학적 언어 등과 연관시키는 시도. ‘신체의 지·신체의 기법’ 편에서는 스포츠 주술 무용을 통해 인간의 몸이 가진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보인다.
▼'知의 기법' '知의 논리' '知의 윤리' '知의 현장'/ 고바야시 야스오 후나비키 다케요 엮음/ 이근우 외 옮김. 각권 340∼390쪽 1만2000원▼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