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거기에는 질펀한 육체 대신 기억만이,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환상같은 맑고 투명한 관능이 있을 뿐이다. 젊은 여인의 매혹적인 살은 곳곳에서 드러나지만, 그 살은 소통이 없는 관조적 쾌락 그 자체로 존재한다.
육체의 소통이 없다는 이유로 둘의 관계는 파탄으로 끝난다. 시인에게는 그것이 상대에 대한 존중이었으나, 여인에게는 모욕이었고 갈증이었다. 그러나 그 파탄으로 인해 사랑은 한 순간 완성되는 듯하다. 행복했던 시절과 아름다운 밤은 오랜 시간에도 불구하고 기억속에서 완벽하게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떠나간 여인은 돌아오지 않는다. 사랑은 길게 메아리치는 목소리에만 실려 있을 뿐.
그 목소리는 1967년 4월 익사한 젊은 날의 연인 가젤과 와히다 모두의 것이다. 서른 둘에 만난 스물 두 살 추억의 여인 가젤, 그녀를 여전히 잊지 못하고 사랑하고 있는 가리브. 사랑이 있는 한 시인은 늙지 않는다. 그리고 나폴리는 바로 그 사랑하는 여인의 상징이다. 추억의 온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젖가슴이자,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육체인 것이다.
거기에서 시인은 가젤의 영혼을 나누어 가진 듯한 아름다운 창녀를 만난 것이다. 사랑의 추억에 우는 남자, 이루지 못하는 자신의 사랑에 우는 여자. 그 울음은 바다의 물을 닮은 푸른 대리석에 스며들어, 눈물로 흘러내린다. 우는 대리석.
시인은 와히다를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옛사랑의 망령으로 현실의 사랑을 모욕할지도 모르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와히다의 몸을 사랑하고, 원한다. 독신인 그의 고독한 영혼의 집은 여인의 살의 냄새로 가득하다. 냄새는 벽을 타넘어 번져 나가고, 마침내는 그 집을 허물어 와히다를 찾아 나서게 만든다.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 향기만 남기고 더 먼 곳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와 살의 향기가 어우러져 나폴리의 퇴락한 벽에 다음과 같은 언어를 남긴다. ‘우리는 사랑의 것이니 사랑으로 돌아간다.’
이 작품은 1987년 ‘신성한 밤’으로 공쿠르상을 수상한 타르 벤 젤룬의 최근작이다. 작가는 모로코 출신으로 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하다가 프랑스로 건너가 시, 소설, 에세이 등을 발표하며 전방위적 글쓰기를 실천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방인의 서사를 구성하는 주요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모국을 떠난 자의 고독, 합리주의적인 기독교 문명과는 전혀 다른 신비적 정신주의가 열대 바닷가의 밤처럼 펼쳐놓는데 능란하다. 이 작품을 들춰봐도 그 밤의 열기와 내음과 소리들이 독자 감각의 혈맥을 타고 스며든다. 그것을 흐르는 사랑의 영혼이라 부르면 어떨까?
구어체 같지 않은 몇 군데 번역의 어투가 마음에 걸리지만 리듬감 있게 읽히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무수한 이질적 문화의 코드가 우리 독자들에게는 어떻게 비쳐질까? 궁금하다.
▼'감각의 미로' / 벤 젤룬▼
박철화(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