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실크로드의 악마들' 탐험가인가 약탈자인가?

  • 입력 2000년 7월 28일 18시 46분


‘어떤 고고학자보다 가장 대담하고 모험적으로 고대세계를 공략했던 경이로운 인물.’

이렇게 평가받아온 영국의 지리학자이자 발굴 탐험가인 오렐 스타인. 1907년, 45세의 스타인은 실크로드를 탐험하기 위해 중국 둔황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둔황 천불동(千佛洞)에 엄청난 양의 고문서가 숨겨져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천불동은 400개가 넘는 석굴사원과 벽화 조각상 등이 가득한 고대문화의 보고. 스타인은 설레는 가슴을 안고 천불동으로 향했다.

그러나 고문서가 보관돼있는 17호 석굴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스타인은 욕심을 버릴 수가 없었다. 문을 열어 달라고 며칠 동안 관리인을 설득했다. 관리인이 꿈쩍도 하지 않자 스타인은 돈으로 회유했다. 돈에 넘어간 관리인은 끝내 900년 넘게 굳게 닫혀있던 17호 석굴의 문을 열었다.

스타인은 불경 등 각종 고문서를 동굴 밖으로 들어내기 시작했다. 그 양은 수십상자에 달했다. 특히 당시로선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 인쇄물로 알려진 9세기 ‘금강경’도 들어있었다(물론 지금은 우리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가장 오래된 인쇄물로 확인됐지만). 그 귀중한 문화재들은 아무런 제지 없이 런던으로 옮겨졌다.

이 대담한 인물 스타인은 과연 탐험가인가, 약탈자인가.

이 책은 스타인을 비롯해 스웨덴의 스벤 헤딘, 영국의 오렐 스타인, 독일의 폰 르콕, 프랑스의 폴 펠리오, 미국의 랭던 워너, 일본의 오타니 고즈이 등 20세기초 실크로드를 찾아 유물을 발굴했던 고고학자 혹은 탐험가 6인의 실크로드 탐험사이다. 저자는 그러나 그들이 목숨을 걸고 발굴과 탐험을 했지만 그것은 발굴 탐험이 아니라 문화재 약탈, 고고학적 침략이라고 말한다.

프랑스의 펠리오는 스타인이 둔황에서 고문서를 수집했다는 얘기를 듣곤 스타인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했다. 유물을 프랑스로 빼내가 유물 사진집을 냈고 그로 인해 일류 중국학자로 평가받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그들이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었다고 비판한다. 실크로드 탐험이라는 흥미진진함과 함께 역사에 대한 교훈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실크로드의 악마들'/ 피터 홉커크 지음/ 사계절/ 김영종 옮김/ 364쪽, 1만원▼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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