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후 미국경제는 고도성장의 황금기를 구가했고 이를 기반으로 1960년대부터 문화산업이 붐을 이루게 됐다. 그렇지만 문화산업의 붐은 대중예술 분야에 한정됐고 순수예술은 정체를 면치 못했다. 특히 교향악단 오페라단 무용단 극단 등 순수 공연예술 생산자들의 재정적자는 갈수록 심해졌고 공연예술의 존립 자체가 문제로 등장했다.
▼1960년대 미국서 처음 등장▼
이처럼 순수예술이 시장경쟁에서 실패해 사양산업이 됨에 따라 정부차원에서 재정지원을 통해 이들을 존속시켜야 하는지의 여부가 진지하게 검토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를 위해 문화에 대한 경제적 분석이 필요했다. 문화경제학의 효시가 되는 저술인 보몰과 보웬의 ‘공연예술:경제적 딜레마’(1966년)는 이 문제를 실증적으로 분석하고 정부지원의 필요성을 제시한 것이었다.
실제 미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예술에 대한 정부지원이 크게 늘어났다. ‘국립예술기금’이 설립됐고 각 지방정부의 예술지원 규모도 상당히 증가했다. 이에 상응해 경제학자들의 문화예술 연구도 증대했다. 1970년대 들어서는 문화경제학회가 만들어지고 학회지가 발간됨으로써 이 분야의 연구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진전되었다. 이후 유럽 호주 아시아 각국에서도 상당한 연구성과가 나오게 됐고 한국에서도 1996년에 문화경제학회가 조직됐다.
그 동안 문화경제학에서 다루어진 주제는 실로 다양하다. 그렇지만 많은 연구는 문화예술산업의 시장 구조와 문화예술산업의 경제적 역할이라는 두 주제에 관련된 것으로 이들 주제는 모두 문화예술에 대한 공공지원의 근거를 마련하려는 의도를 담은 것이었다.
위의 첫째 주제는 1960년대 문화경제학의 발생기부터 주된 분야였다. 경제학자들은 참가조사나 관객조사를 통해 예술 수요자의 특성과 수요 결정요인을 밝혔고 공연예술단의 비용과 수익에 관한 여러 자료를 분석해 공연예술 공급의 특성을 밝혀냈다. 이와 함께 예술가 공급시장에 대한 연구도 많이 이뤄졌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문화산업의 시장 구조가 상당부분 실증적으로 밝혀졌으며 이것이 문화정책의 기초 자료로서 활용됐다.
둘째 주제인 예술의 경제적 역할에 관한 연구는 1980년대에 본격화되었다. 오일 쇼크 후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레이건 정부의 집권으로 각종 예산지원이 축소되자 예술지원의 새로운 논거가 필요했다.
▼정부지원의 이론적 근거 마련▼
이 시기 연구들은 예술에 대한 지출이 다른 경제활동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특히 각 지역의 문화예술이 그 지역경제의 발전에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파급효과를 지니고 있음을 밝혔다. 예술이 고용창출, 관광객 증대, 기업 유치 등 지역경제에 적극적인 기여를 한다는 점을 주장함으로써 지방정부의 지원을 구하는 근거로 활용됐다. 산업으로서의 예술과 지역경제 발전의 연관성에 관한 이들 연구는 문화경제학의 시각을 예술 내부의 미시적인 관점으로부터 예술과 외적 체제간의 거시적 관점으로 이동시켰다.
한편 1980년대부터는 정부의 예술지원 정체에 대응해 기업 등 민간부문의 예술지원을 증대시키기 위한 기업메세나 연구나 공연예술단의 자체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예술경영 연구도 늘어났다.
이처럼 문화경제학은 문화예술이 직면한 상황에 따라 문제 영역을 변화시켜 왔지만 경제학적 수단을 문화예술에 적용한다는 점에서는 공통된 것이었다.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물적 변수간의 수량적 관계를 다루는 것이어서 미적(美的) 변수들을 제대로 취급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예술의 특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하고 ‘예술 없는 예술정책’을 가져올 우려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문화경제학이 예술발전에 끼친 기여를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현대 예술이 직면한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예술지원의 기반을 마련했고 예술정책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었다.
다만 지금까지 문화경제학이 순수예술 분야에 치우쳐 있었기 때문에 대중예술을 포함한 문화 전반에 걸친 인식의 확대가 필요하다. 또한 아직 외국 연구성과의 수입에 치중하는 것이 현실이므로 한국 문화예술 자체에 관한 연구의 축적이 절실하다.
이재희(경성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