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말 서울 강남구 도곡동 대림 아크로빌에 입주한 주부 이승옥씨(29)는 벌써 ‘양재천 예찬론자’가 다 됐다. 그는 “유난히 더운 요즘 밤 9시 무렵이면 양재천 산책로는 더위를 식히러 나온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경기 과천시 관악산 부근에서 발원, 강남권을 가로질러 한강으로 흘러가는 양재천은 4, 5 년 전만 해도 악취를 풍기는 ‘천덕꾸러기’였다. 그러나 이젠 양재천이 되살아나 주민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됐다. 앞으로 달터공원 주변에 반딧불이 공원이 새로 들어서는 등 양재천 주변 가꾸기 사업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런 탓인지 양재천은 요즘 하천 정화의 새 모델로도 각광받기 시작했다. 2002년 월드컵대회를 앞두고 서울시가 최근 발표한 난지천 불광천 홍제천의 자연하천 조성계획 모델도 양재천의 ‘오늘’이었다.
서울 강남구가 성공한 ‘양재천 살리기’ 작전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물을 맑게 하라〓5년 넘게 ‘양재천 살리기’ 현장에 있었던 강남구 이광세 치수과장은 “양재천 살리기 사업의 관건은 수질 개선”이라고 말했다. 물이 맑지 않은 상태에서 ‘친(親)환경’ 사업을 아무리 벌여봐야 ‘밑 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강남구는 95년말부터 97년8월까지 사업비 21억원을 들여 영동2교 부근에 수질정화시설을 갖췄다. 하루 평균 처리 용량은 3만2000t.
수질 정화방법은 화학제 대신 자갈을 사용한 것이 특징. 원리는 간단하다. 하천의 오염물질이 자갈과 부딪쳐 가라앉게 되면 자갈표면에 있는 미생물들이 이를 빨아들인다. 미생물들은 오염물질을 물과 탄산가스로 분해시킨 후 이를 다시 하천으로 흘려보내 맑은 물을 유지토록 한다는 것. 자연상태의 하천에서 일어나는 침전―흡착―분해의 자정(自淨) 작용 효과를 극대화시킨 셈이다.
이 같은 정화장치 자갈밭 1세트는 폭 11m, 길이 20m, 깊이 4.7m 규모. 양재천 둔치 밑에 모두 8개 세트가 깔려 있어 정화시설 길이는 모두 190m에 이른다.
▽자연상태로 만들어라〓수질개선과 함께 천변 일대를 자연상태로 되돌리는 작업도 시급했다. 일직선으로 콘크리트 포장된 하천주변을 곡선화하면서 물과 맞닿는 부분에 돌나무 갈대 갯버들 등을 심었다. 수질정화는 물론 물고기와 야생 조류까지 끌어들여 자연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이 목표였던 것. 최근 얼룩동사리 피라미 모래무지 각시붕어 등이 하천에 노닐고 있어 성과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하천 중간부터 수질을 개선한다는 강남구의 실험은 서울시의 안이한 하수처리방식에 ‘경종’을 울렸다. 그동안 서울시는 지천 중간에 정화시설을 갖추기보다는 한강 합류지점에 대형 하수처리장만 세우면 ‘수질정화는 끝’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던 것. 서울시가 뒤늦게 지하철 공사구간에서 발생하는 지하수를 지천에 흘려보내기로 한 것도 하천의 이 같은 자정능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었다.
<정연욱기자>jyw11@donga.com
▼'환경 프리미엄' 업고 주변 아파트값 '껑충'▼
양재천이 살아나면서 주변 아파트값도 덩달아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결과는 격주간 부동산정보지 ‘부동산플러스’가 양재천 주변 아파트와 수도권 전체 아파트를 대상으로 외환 위기 직전인 97년10월31일 가격을 100으로 지수화해 평균 평당가의 변동률을 조사한 결과 밝혀졌다.
‘부동산플러스’에 따르면 양재천 주변 아파트의 경우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본격화된 98년 초부터 시세가 급락, 7월 한 때 75.17까지 떨어졌다. 이후 점차 회복세로 돌아서기 시작, 1년 후인 99년 7월 23일 89.93까지 회복했고 다시 올 7월 21일에는 외환위기 이전 수준에 거의 육박한 99.09에 도달했다.
반면 수도권 전체 아파트값은 98년 10월에 80.76을 최저점으로 회복세로 돌아섰으나 21일 현재까지도 94.93에 머물러 있다.
‘부동산플러스’ 안명숙 차장은 “양재천 주변 아파트가 수도권 전체 아파트보다 가격 하락폭이 컸던 것은 외환 위기 때 대형 아파트일수록 집값이 많이 떨어진 데 영향을 받은 것”이라면서 “그러나 이 지역이 대부분 강남의 인기 주거지역인데다 양재천 수질개선에 따른 환경 프리미엄이 가세해 빠른 속도로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터넷부동산 정보 전문업체인 ‘부동산 114’의 김희선 이사는 “아파트가 대부분 80년대에 지어져 재건축 대상이기 때문에 개발 기대 심리로 가격 상승 폭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자치단체 '양재천 명암'▼
자연은 사람이 가꾸기 나름이다. 양재천이 흘러가는 지역 지방자치단체들의 정책에 따라 양재천의 수질은 크게 다르다.
■과천시〓발원지인 경기 과천시 구간 양재천의 수질은 상류 부근에서 생화학적 산소요구량(BOD)이 2.9¤(2급수)으로 깨끗한 편이지만 서울 가까운 주암동 주암교를 거치며 7.0¤(4급수)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 관악산이 돌산이다 보니 요즘 같은 갈수기에는 수량이 부족해 수질이 더욱 나빠지고 있다. 과천시는 자연형 하천으로 만들기 위한 연구용역이 끝나는 대로 내년부터 본격적인 정화사업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서초구〓과천의 하수종말처리장을 거치긴 해도 서울 시계로 들어오면 수질은 20¤(10ppm 이하는 5급수) 수준으로 나빠진다. 비가 오지 않을 경우 과천시와 인접한 서초구간 양재천에서 악취가 나는 물이 흐르는 것도 이 때문. 서초구는 97∼98년간 양재천 주변에 저수로 자전거도로 정비 등에 29억원을 쏟아부었으나 수질 개선이 되지 않자 주민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서초구는 수질 정화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서울시에 28억원의 예산 지원을 요청했지만 서울시는 “상류지역인 과천시가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버티고 있어 서초구 지역내 수질 개선 전망은 아직 불투명한 상태다.
■강남구〓강남구는 삼성그룹에 지역내 건물 신축을 허가해 주는 대가로 받은 자금으로 강남구간 상류지역에 수질정화시설을 설치하는 등 수질 개선에 주력했다. 덕분에 5급수의 양재천이 3급수로 깨끗해졌다.
<정연욱기자>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