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담론]뉴요커 "정신 똑바로 차려라"

  • 입력 2000년 8월 7일 19시 09분


뒤집힌 세상에서 홀로 하늘을 직시하는 모습을 그린 맨해튼 거리의 광고
뒤집힌 세상에서 홀로 하늘을 직시하는 모습을 그린 맨해튼 거리의 광고
뉴욕 맨해튼 33번가 매디슨 스퀘어 가든 앞의 한 건물벽을 가득 채운 광고에는 거꾸로 선 세상을 배경으로 홀로 당당하게 서서 높은 하늘을 바라보는 뉴요커의 가슴에 이런 말이 써 있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Return your mind to its upright position).”

똑바로 선 일상적 자세로는 스스로가 너무 지루해 보여 서 있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거리. 그 거리에서는 이미 피부색과 옷차림과 머리모양과 음식에서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개념을 찾아낼 수 없다.

이미 4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뉴욕이지만 유럽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열등감으로부터 비롯된 뉴요커들의 강한 문화적 욕구는 유럽 이외의 문화에까지 강력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이제 그 흡입력은 자신들을 정복한 민족마저 자신들의 문화 속에 용해시켜 버렸던 중국의 문화적 포용력을 방불케 한다.

문화적 전통의 결핍에 대한 욕망을 다른 문화로부터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은 대단히 불행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 한편으로 문화적 전통의 권위에 대한 부담을 상대적으로 덜 감당해도 된다는 장점을 갖는다. 분석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듯이 “세계는 사실의 총체이지 사물의 총체가 아니다.” 그러나 역사와 전통의 무게가 무거울수록 세계의 ‘사실’은 시공간을 점유하는 무거운 ‘사물’처럼 공동체 구성원의 가치관을 짓누른다.

하지만 어느 문화도 인간의 역사에서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한 사람의 생애에서도 우리는 몇 차례 문화적 변화의 충격을 겪게 된다. 한 시대에 생산된 문화는 역사 내의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문화 생산자와 수용자 사이에서 새로운 문화를 지속적으로 생산해 내는 인과관계의 출발점이 된다. 우리는 이미 자본주의사회의 대중문화가 포용해 내는 다양한 문화를 보며 문화의 개념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얼마나 빈약한 것인지 느끼고 있다.

브로드웨이를 장식하는 현란한 간판들은 모든 형식을 부숴버리는 미학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것은 54번가 현대미술관(MoMA)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이나 파블로 피카소의 ‘거울 앞의 소녀’가 팽팽한 긴장을 유지해야 할 원형 시계의 균형이나 삼차원적 색조의 형식을 깨뜨림으로써 현실의 정형성을 넘어서는 미를 창조하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상을 압도하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나 록펠러 센터의 직선적 위압도 그저 뉴욕의 한 시대를 장식하는 장식품 중 하나일 뿐이다. 그곳에는 코리아와 차이나와 이탈리아와 브라질과 히브리가 공존한다.

서구적 의미의 진보를 기준으로 줄세우기를 하는 대신 문화적 다양성을 허용하는 관용 뒤에는 엄청난 소화력으로 그 다양한 문화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가는 힘이 있다. 노자나 루소처럼 자연으로부터 멀어지는 인간의 문화에서 악의 뿌리을 발견하든, 공자나 헤겔처럼 인공의 문화에서 미완성의 인간을 완성으로 만들어 가는 희망을 발견하든, 인간의 다양한 문화는 이렇게 인간을 기르며(culture) 폼나게 다듬어(文化) 가고 있다.

문화의 다양성이 주장되는 곳에는 언제나 가치판단의 포기 또는 극단적 회의주의라는 깊은 함정이 도사리지만, 뉴욕의 다양한 문화에서는 회의주의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뉴요커들은 이미 다양한 문화들간의 소통을 통해 문화의 보다 ‘보편적 층위’에 다가가고 있는지 모른다. 이는 그들이 때로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오만함으로 수많은 문화의 혼합 속에서 동시에 균형을 추구하며 언제나 스스로에게 경고하기를 잊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네가 곧 세계의 중심이다.)”

김형찬기자<뉴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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