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나? 그림자하고 둘이다.
소녀:아니 연세가 얼마냐 말예요? 나이를 몇이나 잡수셨냐 이 말예요?
영감:정월 초하룻날 한 그릇 먹고 여지껏 안 먹었단다.
소녀:계시긴 어디 계슈?
영감:나 지금 오케 레코드판 속에 들어 있다. 소녀:아이 참, 입담도 어지간하셔. 그런데 왜 그렇게 늙으셨어요?
영감:하루 지날 때마다 헤져서 그렇단다.
1920∼30년대 조선 최고의 만담가로 통했던 신불출의 만담 중 일부다. 초대 종로문화원장인 저자는 신불출을 비롯해 장소팔 고춘자 손일평 김원호 윤백남 등 한국 만담가들의 역사와 그 이면사를 정리했다.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저자는 만담레코드와 가사지뿐 아니라 관련서적과 잡지 신문 증빙자료 등을 샅샅이 뒤지며 한국인 특유의 웃음의 역사를 추적했다.
만담이 당시 사람들의 심금을 움직였던 것은 바로 그 시대의 삶을 생생하게 이야기에 담았기 때문이었다. 만담의 귀재 신불출이 무대를 떠나 북으로 올라가야 했던 것도 좌파적 성격의 이데올로기를 만담에 실었기 때문이었다. 미군정 시대에 태극기의 붉은 빛이 흘러내리듯 공산주의가 남한을 장악하는 것이 대세라는 만담을 했으니 분노한 관중들이 무대로 뛰어올라갈 만했다. 하지만 그런 적나라한 이념적 대립이 바로 당시의 현실이었고 그 현실의 한가운데서 만담가는 국민들과 애환을 같이 했다.
만담가 장소팔은 “개그의 아버지는 코메디, 코메디의 아버지는 만담, 그리고 만담의 아버지는 재담”이라고 말했다던가. 저자는 재담의 달인 박춘재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한 ‘재담 천년사’(백중당)도 함께 내놨다. 530쪽, 2만원
▶ 만담 백년사 / 반재식 지음 / 백중당
<김형찬기자>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