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점에서 유럽 도자기의 연원과 문화를 일별한 첫 저작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영국에서 앤티크 딜러로 활동하는 저자가 1년여간 모은 자료에 현장 경험을 녹인 노작. 영국의 ‘웨지 우드’ ‘우스터’ ‘무어크로프트’, 이탈리아의 ‘도치아’ 등 말로만 듣던 세계적인 도자기 명품 200여점의 사진을 넘겨보는 재미만도 각별하다.
하지만 저자의 시선은 단순하게 유럽 각국의 도자기 제조법이나 명품을 소개하는데 머물지 않는다. 도자기 문화를 통해 유럽과 동양의 시대상을 조망하는데까지 나아간다. “시대 정서와 문예사조가 담긴 도자기는 살아있는 미술관이자 박물관”이기 때문이다.
유럽은 18세기초만해도 백색 도자기를 만들지 못했다. 유약과 발색기술은 발달됐으나 고령토를 1300도 고열로 장시간 구워내는 ‘불의 미학’을 깨우치지 못한 탓이다. 중국 도자기에 매혹된 중세의 권력자들은 도자기를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여겼다. 같은 무게의 금을 주거나 집을 팔아서라도 수집하려 안달했다. 한 역사학자는 “유럽 왕과 군주들이 중국 팬시에 전염되어 재산이 거덜날 지경에 이르렀다”고 개탄했을 정도다. 각국의 왕들이 ‘화이트 골드’로 불린 백색자기를 개발하려고 팔을 걷어 붙인 것은 당연한 일. 연금술사와 장인을 독려한 끝에 1710년 독일에서 그 기술이 개발되기에 이른다. 그 뒤 유럽 전역으로 도자기 제법이 보급됨으로써 독특한 색상과 디자인을 가진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영국의 우스터 공장에서 점토에 뼈가루를 섞은 ‘본 차이나’를 개발한 것은 도자기의 종주권을 중국에서 유럽으로 가져온 상징적 사건으로 꼽힌다. 이렇게 단기간에 도자기 문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배경에는 자본주의 개막과 자유무역의 확대, 신흥 부르주아의 ‘벤쳐 정신’이 풍미한 시대 분위기가 있었다.
저자가 도자기를 통한 문화교류의 일례로 일본을 드는 것은 곱씹어 볼만하다. 17세기 유럽에 처음 자기 존재를 알린 것이 바로 도자기를 통해서였기 때문. 유럽의 도자기 명가들이 아직도 ‘아마리’나 ‘가키에몬’ 같은 일본풍 장식을 이어갈 정도로 그 영향은 심대하다. 하지만 16세기까지 자기 기술을 가진 것은 중국과 우리나라 뿐. 저자는 “대륙정벌의 명분을 내세운 임진왜란이 실은 도자기가 큰 돈이 되는 걸 안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의 자기문화를 탈취하기 위한 전쟁”으로 추측한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때도 우리는 ‘우물안 개구리’였다는 사실이다. 239쪽 1만8000원.
▶ 유혹하는 유럽 도자기 / 김재규 지음 / 한길아트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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