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는 어느 날 아침, 기억을 상실한 채 모텔에서 깨어난 38세의 남자 이규도의 이야기다. 마치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주인공처럼, 이규도는 문득 자신이 과거의 기억을 상실한 한 마리 매미가 되어있음을 발견한다. 겨우 한달 동안 울다가 죽는 삶을 위해 무려 5년이 넘는 긴 세월을 땅 속에서 애벌레로 지낸 후 어느 날 허물을 벗고 비상하는 매미―
그 매미는 자신의 오랜 지하생활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매미’의 주인공은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기 위해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게 되고, 그 여정을 통해 그는 비로소 자신이 왜 그리고 어떻게 매미가 되었는가를 깨닫게 된다.
최수철의 주인공이 우리를 데리고 가 보여주는 것은 바로 어두운 지하세계에서 영혼을 상실한 채, 오직 금속과 광물에만 둘러싸여 있는 인간들의 공허한 삶이다. 인간의 필수품인 금전과 자동차 역시 금속의 껍데기일 뿐이다. 그러한 ‘금속과 광물에 속도까지 붙으면 위험한 흉기가 된다’고 주인공은 말한다. 그런데도 오늘날 우리는 금속과 광물의 미친 듯한 질주 속에 살고 있다. 이규도는 자신이 과거에 벤처, 경영, 인터넷 등을 다루는 카피라이터였으며, 돈과 속도의 포로가 될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그러한 영혼의 포충망으로부터 무사히 빠져 나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매미들에게 인간세상은 실망의 연속이다. 예컨대 주인공이 동료 매미들과 방문한 병원 응급실과 사이비 교단의 교회는 이미 육신과 영혼의 치유 기능을 상실한 곳으로 묘사된다. 매미들은 또 잠시 엘리베이터에 갇혀 극도의 공포를 느낀다. 자유로운 매미의 날개와는 달리, 인간의 이동수단은 언제나 꽉 막힌 금속상자일 뿐이다. 인간의 언어 역시 정치적이고 주도권을 노리는 헤게모니의 전장이다. 그러나 오염되지 않은 매미의 울음소리는 ‘강력한 삼라만상의 삼투압을 느끼게 하는’ 순수한 태고의 음향이다. 그래서 인간들이 발산하는 수많은 전화와 휴대폰의 소음 속에서 매미는 자연의 울음으로 교류하고 저항하며 경고한다.
‘매미’는 탈바꿈, 껍데기, 그리고 변신의 모티프 등을 잘 활용한 주목할만한 작품이다. 최수철의 작품 중에서 ‘매미’는 가장 재미있게 읽히지만, 특유의 무거운 주제와 사변적 문체는 여전히 작품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그의 소설 쓰기가 곧 소설의 근원 탐색이 되기 때문이다. 최수철은 글쓰기의 문제와 소설의 미래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먼저 천착했던 특이한 작가다. 80년대 후반, ‘외국문학’에 연재되던 ‘알몸과 육성’을 읽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당시 최수철이 얼마나 소설 쓰기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고뇌했는가를 안다.
최수철은 98년에 나온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랑’ 4부작 서문에서, “새로운 형식에 대한 모색이 부족하다면, 어떤 문화도 세계적으로 이해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소설에서는 소설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이나, 발상의 전환에 따른 새로운 시도를 찾기가 그리 쉽지 않은 듯 하다”라고 말하며, 소설양식의 변화와 실험정신을 주창하고 있다. ‘매미’ 는 작가의 그러한 이론이 창작으로 형상화된 값진 문학적 결실이다.
매미의 울음은 호출기나 휴대폰을 통해 “인간들이 어지럽히고 있는 음파의 세계에 대한 매미들의 반란이다.” 매미들은 진동과 울음을 통해 우리에게 영혼과 기억을 잃지 말라고 메시지를 보낸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 역시 한 철을 노래하다 죽는 매미와 다를 바 없다고. 누가 매미의 울음을 소음이라 하는가? 시도 때도 없이 사방에서 울려대는 인간의 휴대폰 소리야 말로 우리를 괴롭히는 이 시대 최악의 소음이 아니겠는가?
▶ 매미 / 최수철 지음 / 문학과 지성사
김성곤<문학평론가·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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