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른바 언어중추와 미를 느끼고 창조하는 부위는 뇌 속에서 퍽 다른 곳에 놓여 있다. 하지만 ‘화첩기행’에는 그 모든 뇌 부위들이 한꺼번에 부스댄다.
어려서 학교 숙제로 기행문이란 걸 한번이라도 써 본 이라면 누구나 여행을 하며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 것이다. 전쟁을 겪고 반세기는 지나야 제대로 된 전쟁소설이 나온다 했듯이 여행을 하며 북받치는 감흥을 그대로 쏟아놓은 글들은 화약내가 가시지 않아 싫다.
내가 김병종의 글을 기행문이라 칭하면 행여 폐가 될까 두렵지만 정비석의 기행문 이래 처음 읽어보는 걸구(傑句)들이다. 거기에 가슴팍을 열어 보이는 멋들어진 그림까지. ‘화첩기행’을 읽노라면 정철의 ‘관동별곡’을 구해 읽어볼 수 있었으면 싶다. 왠지 김병종은 그때 사람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다.
21세기가 무슨 세기라 했더라. 날짜까지 거꾸로 세며 법석을 떨었던 문화의 세기가 드디어 우리 앞에 와 있다. 과연 무엇이 달라졌나. 문화의 세기가 시작된 지 며칠 째인지를 전광판에 올리면 어떨까 생각하며 나 역시 냉소를 금치 못한다.
온 나라가 8월이 아니면 여행을 떠나선 안 되는 것처럼 법석이다. 바글거리는 도회를 벗어나 더 바글거리는 모래사장에 선다. 동백꽃 필 무렵에는 미당(未堂)의 시를 쥐고 선운사를 찾거나, 배꽃이 흩날릴 때면 부안 땅 매창(梅窓)의 품에 안겨도 보고, 물론 메밀꽃 향기 속에 허생원과 동이가 건넜던 봉평의 개울도 건너보고…. 우리에겐 왜 이런 삶의 여유가 없는 것일까. 전혜린이 거닐던 슈바빙 거리는 못 누빈다 하더라도 옥천에 가서 정지용이 듣던 얼룩백이 황소울음이라도 들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은가.
인문학을 수렁에 몰아넣고도 대학을 운영하겠다는 나라, 과학의 발전 없이 기술만 집어먹겠다는 나라에서 문화는 무슨 얼어죽을 문화인가.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영원히 먹고사는 일에만 목을 맬 우리에게 문화가 당장 밥 한 술 먹여주랴. 이제 남과 북이 통일되면 김병종은 또 북녘 예인들의 발자취를 찾아 화첩을 끼고 나설 것이다. 그곳의 예인들은 두 발이라도 편히 뻗고 계시려나.
▼'화첩기행 1,2'/김병종 지음/효형출판▼
최재천(서울대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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