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신간]'니체가 뒤흔든 철학 100년'

  • 입력 2000년 8월 18일 18시 51분


공간적 거리로는 지구 반바퀴쯤을 돌아야 하는 독일, 시간으로는 한 세기가 떨어져 있는 1900년. 니체와의 거리는 이렇게 만만치 않지만 그가 죽은 지 딱 100년이 되는 2000년 8월 25일은 한국의 철학계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만큼 의미가 깊다. 서울대 김상환 박찬국, 한신대 윤평중교수 등 한국의 철학도로 니체에 진 빚을 절감하는 사람들이 ‘니체가 뒤흔든 철학 100년’을 정리하는 책을 마련했다.

신칸트학파와 신헤겔학파가 학계에서 철학의 주도권을 행사하며 철저한 이성에 기초해 엄밀한 체계를 갖춘 철학을 지향할 때만 해도 니체의 혼령은 예술가와 보헤미안들의 영감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러나 전통과 관습의 파괴자로 자처하며 진리에 대한 격렬한 비판, 비도덕주의, 힘에의 의지, 가치의 전도, 영원 회귀 등을 추구했던 그의 비정형적 사유는 자신들이 만든 체계가 자신의 빠른 발전을 감당해 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20세기 후반의 인간들에게 신선한 복음으로 다가왔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함을 원망하면서도 동시대인보다 100년 이상 앞서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니체는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사람들에게 이해됐다. 이미 그의 생존시에도 그를 이해하기 시작한 이들이 있었고, 1961년 하이데거의 ‘니체론’은 그에 대한 철학적 이해가 본격적인 단계에 들어섰음을 의미했다.

그 이후 들뢰즈 푸코 데리다 등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 의한 니체의 재조명은 그가 20세기를 마무리하고 21세기의 전망을 전해주는 선지자로 인식되게 했다. 이성과 의식과 체계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치열한 지적 모험을 단행했던 그의 철학은 프로이트나 융 같은 정신분석학자들의 무의식과 맞닿아 있었고 예술과 놀이의 유희정신을 담고 있었다. 필자들은 니체의 삶과 사유와 그 철학사적 영향을 두루 섭렵하며 육체적 고통 속에 마지막까지 절망에 가까운 지적 탐험을 계속했던 니체의 여정에 독자들을 동참케 한다.

한국의 철학도들이 니체에 바치는 헌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연초부터 심심치 않게 ‘니체 사망 100년’을 거론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니체 신드롬’(이끌리오), ‘니체와 예술’(한길사), ‘니체와 니힐리즘’(철학과현실사) 등 니체 관련 저서와 번역서들이 연이어 발간됐다. 또 ‘책세상’ 출판사에서는 현재 가장 완벽한 니체전집의 정본으로 평가받고 있는 ‘니체 비평 전집(Nietzsche Werke, Kritische Gesamtausgabe)’(현재 33권 발간) 중 철학서 23권의 완역을 준비해 다음 주 ‘유고(1887년 가을∼1888년 3월)’를 시작으로 출간에 들어간다. 476쪽, 1만8000원

<김형찬기자·철학박사>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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