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에 펴낸 ‘다섯째 아이’는 공포와 격론을 불러 일으켰다. 소설을 쓰며 그토록 고통스러운 적은 없었다고 작가가 토로한 그 소설은 현대의 인간 조건에 대한 섬뜩한 통찰을 보여준다.
영국의 중산층 가정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다섯째 아이가 태어난다. 엄청난 식욕에다 목소리는 짐승의 것이며 괴력으로 동물을 죽이는 이 아이는 중산층의 안정을 파괴하는 흉물이다. 형제들은 그 아이를 모두 두려워하고 괴물로 취급하며 동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쉬쉬하던 부모들도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정신병원에 보내는데 찬동하고 만다. 슬픔을 참다 못한 어미가 병원에 찾아 갔을 때 그 아이는 짐승처럼 묶여 신음하고 있었고 어미는 울며 그 아이를 데려온다. 벤은 결국 집을 나가 불량배 아이들과 어울린다. 여기까지가 ‘다섯째 아이’의 줄거리다.
이번에 나온 속편은 가정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한 벤이 사회로 나왔을 때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집을 나와 배회하고 있는, 겉보기에 이미 40세는 되어보이는 18세의 벤, 그는 사회의 이단자이자 야수이다. 간단한 서류조차 작성하지 못하는 벤을 감싸주는 사람들은 소설 속의 두 창녀와 죽어가는 가난한 할머니뿐이다. 괴력을 가진 그는 마약운반책으로 이용당한 뒤 버려지며 과학자에겐 유전자 실험의 대상이 된다. 또한 영화감독 지망생은 그를 네안데르탈인 역할로 이용할 뿐이다. 떠도는 벤이 런던과 파리를 거쳐 브라질, 아르헨티나로 가는 여정은 안데스 산맥의 어느 산꼭대기에 이른다. 밤하늘의 별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춤추는 벤, 생애 단 한번 뿐인 그 기쁨의 순간이 지나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죽음이 소설을 끝낸다.
레싱이 21세기 벽두에 내놓은 이 소설은 현대 문명에 대한 노작가의 경고이다 (라틴어로 ‘몬스터’는 ‘경고’라는 뜻). 작가 스스로 ‘지금 이 세상에 대해 느끼는 고통과 분노’에 대한 표현이라고 말한 이 소설은 자신과 다른 존재를 적대시하는 병든 현대 문명을 고발하고 있다. 문명의 진보를 빌미로 인간을 물건으로 취급하고 사용 후에는 폐기하는 과학자들과 자본가들이 그 비인간성의 표본으로 맹렬히 성토된다.
평생을 좌파로 살아온 레싱의 쉰 목소리의 경고. “우리는 모두 괴물들이다, 실험실에서, 정신병동에서, 감옥에서 고통받아 일그러진 얼굴들, 그들은 모두 같은 뱃속에서 나온 우리 형제다” 노작가 레싱은 그렇게 절규하는 듯하다.
이영준(하버드대 동아시아문화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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