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3단이 왕위전의 충격을 잊고 생애 첫 도전권 획득을 위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달 서봉수(徐奉洙) 9단에게 허망한 2연패를 당하며 90%이상 손에 넣었던 왕위전 도전권을 넘겨줬다. 형 이상훈(李相勳) 3단은 “동생이 큰 충격을 받았다. 한동안 ‘왜 바보같이 뒀는지 모르겠다’고 스스로 자책했다. 아마 도전권이 걸린 대국이 처음이라 부담감이 컸던 모양이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3단은 금새 훌훌 털고 일어났다. 그는 최근 국내 최대 상금이 걸려있는 LG정유배, 박카스배 천원전, ⓝ016배 배달왕기전 등 3개 기전의 4강에 진출해 다시 한번 도전권을 꿈꾸고 있다.
이3단은 LG정유배에서 조훈현(曺薰鉉) 9단, 박카스배 천원전에서 유창혁(劉昌赫) 9단, 배달왕기전에서 목진석(睦鎭碩) 5단 등 화려한 멤버를 물리치며 4강에 올랐다.
특히 올들어 조9단에게 2연승, 유9단에게 3연승을 거두고 있다.
이3단이 전투력에 일가견이 있는 조, 유9단을 상대로 좋은 승점을 거두고 있는 것은 기풍과 연관이 있다.
목5단은 “이3단이 부분적으로 정확한 맥점과 전투를 풀어나가는 실마리를 발견하는데 본능적으로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며 “따라서 조, 유9단과 같이 맞받아치는 바둑을 둬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3단이 조, 유9단과 둔 바둑은 모두 300수가 넘어가는 난타전으로 이3단의 생기발랄하고 팔팔한 기백이 바둑 내용에도 그대로 나타나있다.
주변에서는 이3단의 바둑이 올들어 분명히 한꺼풀 벗었다고 말한다. 올 성적 50승5패(승률 90.9%).
바둑 기술이 늘었다기 보다는 조9단에 버금가는 기존의 천재성에다 신중함이 가미되면서 가공할 성적을 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만 해도 소비시간 3시간중 1시간 정도만 쓰던 경솔함이 사라지고 진지하고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면서 잠재된 실력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3단이 일단 조, 유9단 양웅(兩雄)을 잡는 법을 터득했다면 이제 남은 것은 서9단과 이창호(李昌鎬) 9단.
마침 서9단과는 박카스배 천원전 4강에서, 이9단과는 배달왕기전에서 만나게 된다.
특히 이9단과는 속기전을 제외한 공식 기전에서는 첫 대국. 이3단이 자신의 장기인 전투로 이9단을 유도한다면 승부를 예측하기 힘들다.
그의 각오도 남다르다. “앞으로 수없이 갖게 될 도전기의 전초전이 아니겠습니까.”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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