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 1번지인 인사동 화랑거리의 한 미술관이 23일 학교를 뛰쳐나온 10대들에 의해 습격당했다.
점령군은 어른들의 미술을 뒤집어엎겠다는 재기 발랄한 생각으로 무장한 10대 11명. 그래서 전시회 이름도 ‘미술관 습격’이다. 이들은 고정관념 없이 자유롭게 만든 12개의 창작품으로 꾸며놓고 선언했다. “어른들의 미술, 그들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미술’은 더 이상 없다”고.
이날부터 9월 3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인사아트센터 내 인사미술공간에서 개최되는 이번 전시회는 서울시 청소년직업체험센터 ‘하자’가 기획했다.
하자센터는 제도권교육을 벗어나길 갈망하는 청소년들이 모여 다양한 대안문화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한 청소년문화공간.
이곳 시민문화작업장 교사인 한영미씨(30)와 몇몇 학생들이 올 3월부터 매주 한번씩 미술전시장을 돌아다니며 관람하던 중 ‘우리도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판’을 벌이게 됐다.
물론 학교나 학원에서 제대로 미술을 배운 학생들은 한 명도 없다. 그 때문에 오히려 미술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식과 고정관념 없이 미술 사진 시 낭송과 퍼포먼스 등을 마음껏 펼쳐놓을 수 있었다.
이윤경(17·이화여고1년)의 작품은 ‘도와줘 울트라 양아치’. 병풍 앞에 놓인 제상 위에는 검은 리본을 두른 TV모니터가 놓여 있고 그 앞에는 불량식품들이 한가득 놓여 있다. 모니터에서는 10대들이 매일 체험하는 일상이 되풀이 방영된다. ‘어른들이 더 이상 10대를 양아치 취급하며 죽이지 말아달라’는, 곧 ‘자신들의 삶을 인정해달라’는 항의를 담고 있다.
그렇지만 자신들의 삶에만 집착하지는 않는다. 박영원(20)의 3차원 애니메이션 ‘미세한―끊어질 듯’은 생명을 경시하는 인류를 단죄하는 인도의 여신을 형상화했다. 작품성은 차치하더라도 인류보편적 문제인 생명애를 표현해보려는 10대의 패기가 반갑다.
참가자 중 유부희(18) 등 5명은 ‘학교가 내 몸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중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이 센터를 찾은 청소년들.
‘동전원피스’라는 작품을 출품한 정혜수(18)는 “자유로운 공간에서 마음껏 미술에 빠져보고 싶어 지난해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말했다.
전시회 기획을 맡아 전시회의 포스터와 리플릿을 직접 만든 지민희(18)는 “문화소비자나 모방자로서의 청소년에서 벗어나 실험적인 세상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한다.
“오히려 상상력을 몸으로 실천하며 사는 10대들로부터 기성세대들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전시회는 ‘한걸음 더 나아가 청소년에 대한 고정관념도 같이 깨보자’는 기획의도도 갖고 있다. ‘청소년’이란 말 자체가 10대들의 언어와 몸짓을 지금껏 어른들이 대상화해 분석해놓은 이름일 뿐이라는 것이 참가자들의 지적. 그래서 이들은 소비적이며 수동적인 이 이름을 거부한다.
미술평론가 백지숙씨는 “자신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정확히 형상화하는 10대들의 특성을 여지없이 보여주며 그 수준도 기성작가들과 비교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며 “미술교육을 포함한 제도권 교육의 문제점 역시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