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것은 20세기초까지도 유럽인은 이 그림을 진짜 코뿔소의 형상으로 철썩같이 믿었다는 사실. 초등학교 교과서와 동물도감에 버젓이 실렸을 정도다. 왜 그랬을까?
때는 1515년 어느날. 코뿔소 ‘리노케로스’가 인도로부터 포르투갈 리스본 항구에 도착했다. 전설속에나 나오는 ‘살아있는 괴물’이 처음 나타나자 온 유럽이 들썩거렸다. 게다가 싸움이 붙은 코끼리가 꼬리를 내리고 도망가자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배고픈 화공들은 앞다투어 코뿔소를 그리기 시작했다. 판화로 찍어 대량으로 팔면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뒤러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실물을 보지 못한 그로서는 과장된 소문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탁월한 직관과 솜씨로 탄생시킨 상상화는 실물을 보고 그린 그림보다 뛰어났다.
뒤러의 그림이 날개 돋힌 듯이 팔리자 다른 화가들도 무단으로 표절하기에 이르렀다. 온 유럽에 ‘가짜 코뿔소’가 퍼졌고 400년간 진짜 모습으로 각인됐다. 예술적 상상력이 진실을 이긴 기막힌 경우다.
이 책은 그림 한 장을 통해서 작가와 당시 시대의 풍경을 독특한 솜씨로 복원했다. 목판화를 예술로 끌어올린 장인정신, 풀잎 하나도 정교하게 재현한 치밀함, 말라리아 모기에 뜯기면서도 바닷가에 밀려온 죽은 고래를 그렸던 호기심은 르네상스 정신의 표상이다. 한편, 로마행 배에 실려가던 ‘리노케로스’의 최후는 우습기 그지없었다. 몇 년간 지구 반바퀴를 돌아도 살아남은 코뿔소는 평온하기로 유명한 지중해에서, 그것도 육지가 코앞인 해안가에서 폭풍을 만나 수장됐다. 노성두 옮김, 119쪽 6500원.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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