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블루 사이공' 4년만에 재공연

  • 입력 2000년 8월 27일 18시 16분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아무래도 가수 김추자의 현란한 율동에 흥겨우면서도 약간 ‘촌스럽게’ 느껴지던 노래 분위기일 것이다.

4년만에 재공연된 뮤지컬 ‘블루 사이공’은 베트남전에 참전한 ‘푸른 옷’의 군인 김상사(손병호·서범석 분)의 삶에 우리 현대사를 입힌 작품.

뮤지컬의 김상사는 김추자의 ‘그 씩씩하고 새까만 김상사’와 달리 사연이 많았다.

이 작품의 미덕은 창작이라는 ‘출생 신분’과 뮤지컬로는 드물게 묵직한 주제를 다뤘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김상사의 몸에 얼룩처럼 남아 있는 우리 현대사의 상처가 가슴 찡하게 밀려올 만큼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경험에 밀착된 짜임새있는 스토리와 탄탄한 연출력이 돋보였다. 희곡과 연출을 맡은 김정숙은 무정함을 넘어, 때로 잔혹하게 느껴지는 역사를 한 인간의 몸에 그대로 투과시킨다.

고향 함경북도 북청에서 어린 시절 강요당한 밀고의 기억, 전우들의 죽음 속에 베트남 애인 후엔(강효성)의 도움으로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의식, 짧은 로맨스로 태어난 라이따이한 ‘북청’과 고엽제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딸 신창의 존재….

무기력하게 묘사된 김상사의 모습은 이 비극이 그의 자율 의지를 초월한 것임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와 고엽제의 후유증에 지쳐 내뱉는 “이제 그만 숨쉬고 싶다”는 그의 쉰 목소리야말로 현실인 것이다. 만약 그를 둘러싼 현대사의 곡절을 구구절절 설명하려 했다면 교훈적이지만 설득력없는 교과서가 될 뻔 했다.

그렇지만 스토리의 힘에 비해 음악은 그리 인상적이지 못하다. 김추자의 노래를 느리고 장중하게 변주한 도입부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를 빼면 클라이막스인 김상사와 후엔의 이별장면 듀엣조차 귀에 남지 않는다. 이 작품이 넘어야 할 ‘숙제’이자 가장 큰 아쉬움은 여기에 있다. 31일까지 서울 동숭동 동숭홀. 월∼목 7시반 금∼일 4시 7시. 1만5000∼3만원. 02―7665―210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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