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한국 작품이 본상을 수상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 그동안 이성강, 정동희 등 몇몇 감독들이 국제 페스티벌 본선에 진출한 적은 있지만, 페스티벌 본상 중 하나를 수상한 것은 우리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이다. 특히 세계 4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의 하나로 명성과 권위가 국제적으로 높은 히로시마 페스티벌에서 수상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욱 크다.
히로시마 페스티벌의 데뷔상은 그랑프리, 히로시마상, 렌초 기노시타상과 함께 경쟁 부문의 중요 4대 본상 중 하나이다. 전세계 56개국에서 응모한 1231편의 작품 가운데 히로시마 페스티벌에 처음 작품을 내는 작가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칸 영화제로 친다면 '황금 카메라상'에 해당하는 중요한 부문이다. 이날 시상을 한 미셀 오셀로 ASIFA 회장은 "위트와 뛰어난 독창성, 캐릭터의 구성력, 이야기 구성이 탁월했다"며 수상 이유를 밝혔다.
◀ 데뷔상 <존재>
<존재>는 경쟁부문 공개 시사 때부터 관객들의 호응이 워낙 높아 입상이 어느 정도 기대됐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 작품이 국제 페스티벌에서 수상한 전례가 없어 과연 입상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도 의견이 엇갈렸다. 시상식 당일 8편의 특별상과 6편의 심사위원 특별상에 호명되지 못하자, 이번 페스티벌에 대거 참여한 한국 관객들 사이에서는 "역시 이번에도…"라는 안타까운 반응이 터져 나왔다.
은근히 수상을 기대했던 관객상마저 러시아 콘스탄틴 브론지트가 만든 <지구의 끝에서>가 차지하자 절망감마저 감돌았다. 하지만 그동안 아시아 작가가 탄 적이 거의 없던 데뷔상 수상자로 발표되자, 객석에서는 커다란 환호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이번 히로시마 페스티벌에 출품한 281 편의 아시아 작품중 <존재>가 유일하게 수상한 것에 일본 관객들도 큰 박수를 보냈다.
당초 수상을 기대하지 못하고 페스티벌에 온 동료들과 폐막식 직후 야간버스로 오사카로 갈 예정이었던 이명하 감독은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한채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격려로 알겠다"며 간단하게 수상소감을 밝혔다.
이번 제8회 히로시마 페스티벌에서는 이명하 감독 외에 계원조형예술대 출신의 '7인조'가 만든 <아빠하고 나하고>도 본선에 올라 호평을 받는등 역대 국제 페스티벌 참가 중 가장 알차고 흐뭇한 결과를 얻어 한국 애니메이션의 위상이 국제적으로 높아졌음을 실감하는 자리가 됐다.
한편, 이번 히로시마 페스티벌의 그랑프리는 도시인의 일상을 동물들의 캐릭터를 이용해 묘사한 캐나다 웬디 틸비와 아만다 포비의 작품 <아침이 시작할 때>가 차지했다. 히로시마상은 노르웨이 피요르 사페긴 감독의 <집을 산 한 남자의 하루>가, 렌초기노시타상은 유진 페도렌코와 로즈 뉴러브의 <백치들의 마을>이 수상했다.
김재범 <동아닷컴 기자>oldfie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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