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니콜 키드먼)와 빌(톰 크루즈)이 마리화나를 피우며 격한 논쟁을 벌일 때, 그들의 침실에서 얼핏 보였던 비디오테이프는 과거 톰 크루즈가 출연했던 영화 <레인맨>(88)의 복사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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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에서 니콜 키드먼이 보고 있었던 TV 영화는 <블럼 인 러브 Blume in Love>(73). 치밀한 완벽주의자인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스쳐 지나가는 소품까지도 함부로 고르는 법이 없다. 그가 니콜 키드먼에게 <블럼 인 러브>를 보게 한 이유는, 이 영화의 결구가 <아이즈 와이드 셧>의 주제와 여러 모로 상통했기 때문. <블럼 인 러브>의 마지막 대사는 '부인을 속인 남자의 러브스토리'이다.
·빌이 대학동창 닉에게 받은 파티 출입 암호 '피델리오(Fidelio)'는 라틴어 어원 'Fidelis'에서 파생된 단어로, '충실한, 정숙한(Faithful)'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또한 이것은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의 제목이기도 한데, 이 오페라의 내용은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남자로 변장한 여자의 이야기다. '가면 파티'의 암호로 사용하기에 퍽 훌륭한 암호였던 셈이다.
·원래 이 영화의 출연 배우 리스트엔 분명 하비 케이틀과 제니퍼 제이슨 리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다. 실제로 두 배우는 15개월이 넘는 촬영기간 동안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정신병적 광기를 꿋꿋이 참고 견뎠다. 촬영 10분전까지도 대본을 손에 쥐어주지 않는 철저한 관리 시스템(보완 유지를 위해), 손가락 모양 하나까지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만드는 통제된 연기 지도. 스탠리 큐브릭의 이 모든 광기를 참고 견뎠건만, 악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러시 필름을 본 큐브릭 감독은 두 배우가 출연한 장면 중 일부를 재촬영하자고 요구했는데, 이미 다른 영화에 출연중인 그들은 큐브릭의 요구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러자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아예 두 사람이 연기한 신들을 모두 드러내고, 완전히 다른 배우를 캐스팅해 새로운 버전의 영화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이 영화 출연진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된 배우는 시드니 폴락과 마리에 리처드슨이다. 감독으로 더 유명한 시드니 폴락은 이 영화에서 하포드 부부를 파티에 초대한 빅터 역을 맡았으며, 마리에 리처드슨은 빌의 타락을 경고했던 여성 마리온 역을 맡았다.
·빌이 가면파티에서 목숨을 잃을 뻔하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파티에서 잃어버린 가면을 잠들어 있는 부인 옆에서 본다. 놀라는 빌의 시선을 쫓아 카메라가 방안을 훑으면, 탁자 위에 스탠리 큐브릭의 전작 비디오 테이프들이 널려있는 게 보인다. 그 중 테이블 가장 위쪽에 놓여 있는 비디오테이프가 <풀 메탈 자켓>(87)이다.
·빌이 진찰하는 환자들 중 한 사람의 이름은 카민스키. 이것은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68)에서 컴퓨터 HAL이 죽인 승무원의 이름을 차용한 것이다.
·빌이 소호로 돌아갔을 때, 빌딩 한 쪽 면에 새겨진 조각상엔 '보우먼(Bowman)'이라는 사인이 박혀있는 게 보인다. 큐브릭이 연출한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캐릭터 중 한 사람이 데이비드 보우먼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것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의미심장한 '낙관(落款)'이다.
·빌의 성은 '하포드'다. 처음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빌에게 '하포드'라는 성을 선사했을 때, 그 이유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큐브릭 감독의 증언 덕분에 궁금증이 말끔히 해소됐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증언에 따르면 "하포드(Harford)는 해리슨 포드(Harrison Ford)를 빨리 발음했을 때 나올 수 있는 이름"이라고.
황희연 <동아닷컴 기자> 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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