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각종 음반 판매 순위 상위권에 오르며 상종가를 기록중이지만 그의 표정은 희망적이지 않았다. 지쳐보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고 했다. 고급스런 멜로디를 구사하는 '김동률 표 발라드'로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는 그가 왜 시무룩해져 있는지 궁금해졌다.
▲'희망'은 93년 대학 가요제에서 재즈풍 발라드곡 '꿈속에서'로 대상을 차지했고 가요계에 데뷔한 뒤 6번째 앨범이다. 42인조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등 음악의 규모가 상당히 커졌다.
- 욕심을 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실험해보고 싶었다. 지난 3개월 동안 미국 보스턴과 뉴욕, 영국 런던을 오가며 녹음작업을 했는데 학업(버클리대 영화음악 전공)과 병행하느라 힘들었다. 아마 내 평생에 이렇게 큰 음악으로 음반을 꾸미는 것은 마지막일 듯 싶다.
▲이번 음반의 타이틀이 '희망'인데 무슨 의미를 갖고 있나.
- 한마디로 '절망의 반어적 표현'이다. 이번 음반은 전체적으로 '사랑과 이별'을 소재로 하고 있다. 헤어진 뒤의 극도의 상실, 그것은 절망이다. 그렇다고 사람이 계속 아픔의 공간에 머무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고통 뒤에는 기쁨도 올 것이라는 생각에서 '희망'이라고 지었다.
▲1년8개월만의 가요계 복귀다. 돌아와 활동해 본 소감은.
- 당혹스러웠다. 하루 5~7개에 이르는 방송 스케줄에 녹초가 됐다. 음악만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설자리가 거의 없어진 것 같다. 이제는 메이저가 아닌 마이너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싶다.
▲마이너 뮤지션이라 함은 영화 음악가로의 변신을 뜻하나.
- 엔리오 모리코네나 사카모토 류이치 같은 영화 음악가로 자리잡는 게 나의 최종목표다. 몇 군데 영화사에서 제안을 받긴 했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 거절했다. 서두르지 않고 착실하게 공부하고 연습해 나가겠다. 이번 앨범에 수록한 동양적인 감성이 담긴 연주곡 '윤회'는 영화 음악을 시작하는 첫 포트 폴리오 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고, 만약 당신이 음악을 맡는다면 어떤 영화가 어울릴까.
- '시네마 천국'에 흐르는 엔리오 모리코네의 수려한 선율에 매료됐다. 만약 내가 영화 음악을 한다면?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 같은 영화처럼 은은한 화면과 어울리는 사운드를 만들고 싶다.
▲미국 생활은 어떤가.
- 너무 좋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하루 종일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수많은 가능성이 열려있고 사고방식도 수시로 바뀐다. 나의 발전을 꾀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에서는 오직 돈과 명예를 향해 달려가지만 여기서는 모든 욕심을 버리게 된다.
식사는 주로 사먹는 편이고 가끔 집에서 미역국이나 김치찌개를 끓여먹는다. 한국 사람들은 잘 만나지 않는 편이고 미국 문화를 많이 경험하려고 노력한다. 아직 의사소통이 완전치는 않아도 학업에는 지장이 없다. 지난 학기에는 전과목 A를 받았다.(웃음) 3년 정도면 졸업을 할 수 있지만 오래도록 이곳에서 살고 싶다.
▲그래도 타향인데 외롭지는 않은가.
-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다. 학교 다니고 틈틈이 음악을 만들다 보면 하루가 금새 지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은 가수에서 영화 음악인으로 가는 접점에 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새'와 '취중진담'이 수록된 '전람회' 2집이 마음에 드는데 당신 스스로 베스트와 워스트 앨범을 선택한다면.
- 솔로 1집이 최고였다. 이 앨범에 수록한 '그림자'와 '동반자'는 내가 할 수 있는 발라드의 끝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솔로 2집은 가장 아쉬움이 남는 음반이다. 노래 연습을 별로 못해 목소리도 마음에 들지 않고 녹음도 불안정하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언제까지 국내에 머물고 향후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 일단 추석은 부모님과 보내고 16일 미국으로 떠난다. 아마 1~2년은 음반을 내지 않을 것이다. 나를 채우는 작업을 끝내고 영화 음악인 김동률로 거듭나고 싶다. 노래? 영화 주제가를 부르는 정도겠지.
황태훈 <동아닷컴 기자>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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