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신화'에서 '메시아'로?…서태지 신드롬

4년7개월만에 ‘컴백홈’한 가수 서태지의 근황을 알리는 사서함은 연일 전화 폭주 상태다. ‘서태지문화사랑회’ 홈페이지(www.taiji.or.kr)에는 “9월9일 새로운 역사를 써보자”(울트라맨) “서태지 사냥놀이에 대항할 수호대를 결성하자”(espressoTJ) 등 내용이 하루에 수천건씩 올라오고 있다.

팬들은 9일 서울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열리는 컴백 콘서트의 입장권을 구하기 위해 안달이다. ‘H.O.T.’ 등 다른 가수의 팬들로부터 ‘서태지를 수호하기 위해’ 입장권을 많이 확보하자고 나서고 있다.

한 여성팬은 “서태지의 새 음반 판매가 꼭 100만장은 넘어야 하니까 우리가 나눠서 여러장씩 사자는 얘기를 많이 한다”며 ‘내부 공모’가 있음을 귀띔했다. 서태지와 아이들기념사업회 유수연회장은 “하루 1000여명씩 회원 가입 문의가 온다”고 말했다.

서태지 팬들에게 그는 신화적인 존재다. 윤모씨(27·Y대 4학년)는 “그의 컴백으로 메시아가 돌아왔다고 여겨진다”고 말한다.

서태지신드롬은 기성세대의 ‘서태지 마케팅’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태지는 미국에서 귀국할 때 대한항공측과의 탑승권 협상이 결렬됐고 아시아나항공이 홍보 효과를 고려해 1등석 4석을 무료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신라호텔도 홍보 차원에서 서태지에게 하루 580만원짜리 고급 객실을 제공하고 있다.

윤지련씨(25·학전소극장)는 “서태지 마니아들은 똘똘 뭉쳐 엘리트주의를 형성하며 서태지를 단순한 가수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한 결속력을 지닌 일종의 ‘종교현상’일 수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서태지세대’가 아닌 중고생들도 서태지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점이다. 서울 강남구 H고교 1학년 김모군은 “학교에서 서태지 얘기를 하는 아이들이 많다”면서 “사실 서태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신보를 봐야 그 가치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태지가 데뷔하던 1990년대 초반은 이념의 붕괴 등 사회 중심적 가치가 무너지는 시기였고 신세대는 숨막히는 제도 교육 속에서 ‘아이들의 눈으로’ 스스로를 지탱해야 할 가치를 모색하던 시기였다. 그 결과 찾아진 대상이 제도권 교육과는 거리가 있는 서태지였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세기에 그의 ‘저항’ 이미지가 승계되는 듯하고 일단 적어도 외형상 사회적 임팩트를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태지를 ‘이미지 영웅’ 시대의 산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정치와 종교적 영웅이 죽은 시대, 영웅은 서태지처럼 이미지 관리에 성공한 이들에 대한 ‘훈장’이라는 것. 김성기씨(‘현대사상’ 주간)는 “서태지는 돈 명예 권력보다 이미지가 사회적 자원임을 입증하는 사례”라며 “지금도 기성세대가 ‘기억’하고 마니아가 열광하는 현상은 서태지의 이미지가 드디어 리얼리티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가치의 내면화로 보는 관점도 있다. 서천석씨(서울대병원 정신과 레지던트)는 “자신감을 상실한 현대인들은 이를 보충할 자아를 외부에서 찾는다”며 “서태지가 지닌 가치를 내면화해 자아로 발전시킨 경험을 가진 이들이 많다”고 말한다.

반면 ‘서태지 허상론’도 만만찮다. 서태지 신드롬은 그가 짜낸 ‘신비화 전략’에 팬과 매스컴이 동조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J교수는 “마케팅 전략 전술이 뛰어난 서태지는 수차례의 잠적과 깜짝 은퇴로 팬은 물론 매스컴마저 ‘서태지의 제자’로 만들었다”면서 “지난 공백기에도 매스컴은 ‘결혼설’ ‘비만설’ 등으로 서태지를 상기시켜 왔다”고 분석했다.

<허엽기자>h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