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서태지 옹호론은 저널리즘이 아니라고 하겠다. 적어도 저널리즘이라면 대부분이 '그렇다'고 할 때,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이를 찾아 뛰어야한다. 쟁점이 없는 저널리즘은 너절리즘이 아닐까.
'취재파일4321'은 서태지와 10대 아이돌 가수들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작품'과 '상품'논리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서태지를 작가주의적 관점에서 보고 아이돌 스타들을 아무 생각없는 '춤추고 노래하는 기계'쯤으로 비하하는 것은 곤란하다.
서태지와 댄스 뮤지션들은 서로 다른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전자가 가요상품이라면 후자는 엔터테인먼트 기획상품이다. 상품의 기획이 '자가발전형'인가 '배터리 장착형'인가, '오리지널'인가 '혼성모방'인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수용자의 입장에서는 만져보고 각자 취향에 맞는 장난감을 고르면 그만이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어느 쪽이냐고? 글쎄.... 나는 재미로 치자면 댄스 뮤지션쪽이다. 최근 '보아'의 유니섹시함과, 이정현의 바비패션 '줄래'의 치기가 즐겁다. T.J(장혁)의 엽기성(?)도 빼놓아서는 안되겠다.
'10대 음악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평론가의 인터뷰는 말도 되지 않는 소리다. 그것은 열흘이 멀게 뒤집어지는 스타일 쇼 보는 재미를 몰라서 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자주 신상품이 안나오면 노래방과 DDR로 이어지는 카피캣의 즐거움은 어디서 맛보란 말인가? 댄스뮤지션들을 상품이라고 비난하면서도 노래방에만 가면 신곡에 열광하는 이상한 사람들...
우리 사회는 이미 후기 산업사회의 특징인 포스트 문화권 안에 있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점에서 서태지의 컴백은 잠시 해프닝으로 막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 중심을 인정하지 않고 탈주하는 스키조(정신분열적) 키드들에게 서태지라는 그물망은 부담스러운 문화권력이기 때문이다. 탈권위, 탈중심, 해체의 끊임없는 미끄럼틀에 익숙한 세대들에게 서태지는 메고 가야할 당나귀는 아닐까.
한정석(PD.영화평론가) kalito@crez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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