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낱 신화로 치부되던 트로이 전쟁을 역사로 만든 것은 아마추어 고고학자의 어린 시절 꿈이었다. 어쩌면 역사도 신화처럼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일 뿐일지 모른다. 단지 스릴 넘치는 전쟁이야기거나 애틋한 사랑이야기였던 것을 역사로 만드는 것은 역사학자의 꿈이다. 그리고 그 꿈은 사관(史觀)을 일컫는 다른 말이다.
흥미진진한 고대 전쟁이야기 《역사》가 인류 최초의 역사서가 된 것은 그 책이 "각별히 그리스인들과 페르시아인들이 무슨 이유로 싸웠는지 밝히기 위한 탐구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로 두 나라가 싸웠는지 따진다는 것은 역사가 어떤 방향으론가 흘러간다는 사관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서의 기본은 있었던 사실을 그대로 쓰는 것이다. 사관은 그 실화를 해석하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지, 개인의 생각에 따라 없는 일을 지어내는 것이 아니다. 사관으로 역사가 이뤄진다면 역사에서 객관성이란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헤로도토스가 《역사》 곳곳에서 드러낸 편견은 당연한 것이지, 그리 비난받을 일은 못된다는 견해도 있다.
그런데 그저 사실에 대한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사실의 존재 여부가 문제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독일의 고전학자 데트레프 펠링은 헤로도토스가 《역사》에 나오는 인용문들이 과연 자신이 직접 보고 쓴 정확한 사실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여러 가지 증거들을 볼 때, 헤로도토스는 최초의 역사가가 아닌 최초의 표절작가라고 할 수 있다.
◇날아 다니는 뱀에 관한 이야기
고대 그리스의 병사 |
펠링은 헤로도토스가 바빌론에 가지 않고,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페르시아 문헌을 보고 베꼈다고 주장한다. 그 한 증거는 바로 페르시아 이름들. 그가 쓰고 있는 페르시아 왕의 이름 즉, Cyrus, Cambyses, Hystaspes, Darius, Xerxes, Artaxerxes 등은 그리스어로는 각각 Kurush, Kambujiya, Vishtaspa, Darayavaush, Khshayarsha, Artakhshaca여야 한다는 것.
사실일까 의심스런 대목도 눈에 띈다. 헤로도토스는 부토와 아라비아 사람들에게 들었을 뿐 아니라 그가 직접 봤다고 하는 '날아다니는 뱀'에 대한 부분(8권 38장)이다. 헤로도토스는 자신이 아라비아에 갔을 때 부토 건너편에 있는 도시에서 본 굉장한 해골더미와 함께 아라비아에서 이집트까지 날아가는 여름 뱀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는 구약성서에서 옮겨온 혐의가 짙다. 이사야서는 "남방 짐승에 관한 경고라. 사신들이 그 재물을 어린 나귀 등에 싣고 그 보물을 약대 제물 안장에 얹고 암사자와 수사자와 독사 및 날아다니는 불뱀이 나오는 위험하고 곤고한 땅을 지나 자기에게 무익한 민족에게로 갔으나 애굽의 도움이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30장 6절∼7절)고 전한다.
다른 문명권의 독특한 문화나 관습에 관심을 가졌던 헤로도토스에게 '날아다니는 뱀'이라는 문장은 충분히 눈길을 끌었을 법하다. 그뿐 아니라 3권의 다리우스왕 이야기의 어떤 부분은 페르시아 왕국의 공식 선전문과 그 세부적인 묘사까지 흡사하다. 직접 보고 들었다기보다 그대로 베껴 적은 흔적이 역력한 것이다.
그는 잘 알려진 대로 부유하고 교육도 많이 받은 인물이다. 당대의 문학을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의 책에서 호머를 포함, 헤시오도스, 사포, 핀다로스 등 많은 문인의 작품을 인용했다. 또 그리스 지리학자들의 글도 인용했는데, 세계에 대해서 쓴 밀레의 헤카타이오스의 책도 이미 읽은 것으로 보인다.
◇대단한 여행가이자 지리학자
헤로도토스의 세계 |
그가 직접 체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책 곳곳에서 발견된다. 대단한 여행가이자 지리학자로 알려졌지만 그의 책에는 당시 실제 지리와 다른 부분이 많이 발견된다. 예를 들면 그는 세계가 좌우대칭이라고 믿었다. 다뉴브강과 나일강이 대륙을 반으로 나누고 있다고 말이다. 모두 당시 책에서 다뤄지던 대로다.
헤로도토스는 또 다뉴브강의 원류는 먼 서쪽 피레네 산맥에서 발원하고, 나일강은 아틀라스산에서 발원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그리스가 위치하고 두 강을 중심으로 남쪽은 덥고, 북쪽은 춥고 그리스가 가장 쾌적한 날씨라고 한다. 하지만 온화하지 못한 양 지구 끝은 황금과 호박, 온갖 향신료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다고 썼다.
잘 알다시피 이것은 잘못된 지식이다. 더 황당한 이야기도 있다. 인디언들의 정액은 검다는 둥, 어떤 나라 사람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울고, 사람이 죽으면 즐거워하며, 먼 북쪽지역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잡아먹는다느니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헤로도토스는 '역사'라는 이름으로 표절과 거짓말을 일삼은 사람이 될까?
사실에 대한 정확한 보고, 사태 원인의 진지한 탐구 등으로 인류 최초의 역사책을 남긴 헤로도토스. 그는 냉철한 이성과 부지런한 다리를 가진 역사가였나, 아니면 그저 이곳저곳에서 얻은 재미있는 사실로 사람들을 즐겁게 한 호사가에 불과한가. 역사는 세월 따라 쌓이고, 가설은 여전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이현주(북코스모스 http://www.bookcosmos.com) hyunjoo70@bookcosm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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