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

  • 입력 2000년 9월 8일 18시 34분


조식 이륙 김종직 남효온 김일손 유몽인 등 조선 선비 9인의 지리산 기행문을 한데 모은 책.

여기 실린 글의 하나인 성리학자 조식(16세기)의 ‘유두류록(遊頭流錄)’. ‘듀류산 유람 기록’이라는 뜻이다. 듀류산은 지리산의 옛이름이니, ‘지리산 기행문’쯤 될 것이다.이퇴계는 이 글을 읽곤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왜 그랬을까.

조식의 글을 들여다보면 조선 사대부들의 풍류가 여간 아니다. 북치는 사람과 피리부는 사람까지 대동해 지리산에 오르고, 비 내리고 물이 불어나 길이 막히니 거기 눌러 앉아 술을 마시며 시를 읊조리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퇴계를 놀라게 한 것은 조식의 풍류가 아니라 그의 치열한 성찰이었다.

‘처음 위쪽으로 오를 적에는 한걸음 한걸음 내딛기가 힘들더니, 아래쪽으로 내려올 때는 단지 발만 들어도 몸이 저절로 쏠려 내려갔다. 그러니 어찌 선(善)을 좇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처럼 어렵고 악을 따르는 것은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겠는가?’

산을 오르내리면서도 늘 자신의 삶을 경계했던 조식의 치열함이 읽는 이를 감복하게 한다.

책을 읽다보면 조선 사대부들의 지리산 유람에 두가지 목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천왕봉에 올라 공자의 ‘등태산소천하’(登泰山小天下·태산에 오르니 찬하가 다 작아 보이는구나) 의식을 맛보기 위한 것이 그 하나였고, 청학동 등의 신선세계를 노니는 것이 다른 하나였다.

이밖에, 옛사람의 눈에 비친 지리산 안팎의 풍경들도 흥미롭다.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 조식 외 지음/ 최석기 외 옮김/ 돌베개/ 423쪽, 1만5000원▼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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