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인가. 양명학의 교과서인 ‘전습록’의 완역본 ‘양명학 공부’(1, 2)가 나왔었다. 원문 번역과 함께 일일이 해설(정확히는 강의)을 달아 놓은 두툼한 책이었다. 저자는 “강의 준비를 전혀 하지 않지만 일단 강의에 들어가서 입을 열면 진리가 되고 육신 자체가 말씀이 될 정도로 지행이 일치한다”고 제자가 평한 ‘양복 입은 도인’ 현재(鉉齋) 김흥호(金興浩·사진) 선생이었다. ‘현재’라는 호도 ‘계시’라는 뜻이라는 데다 목사 안수까지 받은 분이라는 설명에서 책을 접으려다, 다석 유영모와 위당 정인보 선생에게서 배웠다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선생이 이번에 ‘양명학 공부 3’을 냈다. 시(詩) 문(文) 논(論) 습(習)이라는 독특한 구성이었다. ‘시’에는 양지(良知)를 말한 철학에서부터 통치자의 부패를 꼬집고 벗들을 그리워하는 내용 등 25편의 시가 실려 있다. ‘문’에는 주자학의 ‘대학’ 해석을 뒤집은 ‘대학고본서’와 육상산의 사상을 계승한 ‘상산문집서’ 등 산문 5편을 싣고 있다. 뒤이어 ‘논’에서는 대만의 경원유학(經院儒學) 계열 학자인 짱치인(張其E)과 우징숑(吳經熊)의 글을 일일이 옮기고 해설을 달아 놓았다. 이들은 가톨릭이나 기독교적 입장에서 새롭게 유학을 해석한다. 마지막으로 ‘습’은 ‘양명학 공부’(1, 2, 3)의 핵심요약판이다. 여기서는 ‘전습록’과 문집뿐만 아니라 ‘왕용계전집’ 등 제자의 문집 속에서 양명 사상의 핵심을 보여주는 글만을 모아서 옮기고 해설했다.
그런데 선생의 글을 읽다보면 먼저 그 자유롭고 넓은 해석을 입말투로 옮기는 데 놀라게 된다. ‘마음이 곧 이치이다(心卽理也)’라는 말을 해석하면서 유가의 성선론을 말하다가, 불교의 깨달음(覺)을 말하는가 하면 어느새 기독교의 회개하고 믿음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제시한다. 이러한 서술 방식에서 보면 선생은 개념을 물고늘어지기 보다 ‘지금’ ‘나’의 물음에 충실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저 글자 뜻에만 매달려 공부한 사람으로서 동양사상과 서양사상(기독교)을 자유로이 넘나들면서 해석의 주체를 자신에게 가져와 이질적인 사상과 종교간 대화를 이끌어 가는 모습은 하나의 전범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고전의 본래의미가 실체로 존재한다고 믿고 그 해석은 ‘하나’라고 고집하는 사람들에게 선생의 해석은 하나의 이단일 수밖에 없다.
이런 지적 위에서 양명의 ‘지행합일’을 글자 그대로 ‘아는 것과 실제 행동의 일치’로 풀이하는 것이 본래 의미와 맞는지 되묻게 된다. 또 명치유신이나 대만의 장개석 사상에 영향을 준 양명학의 긍정적인 가치를 말한다면, 역시 양명학이 두 나라의 군국주의와 독재논리에 기여했던 측면도 함께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 선생이 그렇게도 경고하는 ‘현대 과학의 폭거’를 제어할 수 있는 인류 공유의 지혜로서 ‘내적 자연’인 양지(良知)가 정말로 새로운 과학을 낳을 수 있을까? 현대의 대표적인 양명학자 모우쭝산(牟宗三)이 말한 ‘양지의 추락(良知k陷)’은 역설적으로 도덕 하는 가슴이 과학 하는 머리로 나아가기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보여준다.
선생의 말대로 정직한 어린이와 지혜로운 어른의 모습을 함께 갖춘 도인을 만나고 싶다.
▼'양명학 공부 3'/ 김홍호 지음/ 솔/ 544쪽, 1만5000원▼
유동환(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연구원·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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