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현상 빅뱅]10代를 향한 기성세대의 반란?

  • 입력 2000년 9월 8일 20시 09분


“마음이 편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가수입니다. 뭔가 발전하는 것도 같고….”

60대인 김동호(金東虎·63)부산영화제집행위원장은 가수 서태지의 컴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홍익대 김모교수(38)는 “아는 가수가 나와서 좋다”고 말했다.

8일 오전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J음반점 앞. 직장 여성 김모씨(33)는 서태지의 솔로 2집 ‘서태지 2nd’을 꼭 안고 있었다. 김씨는 3일전 예약했다. 음반 가게 주인 김경남씨(37)는 “일주일전부터 예약이 밀려 2000장이 나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iMBC가 9일 열리는 서태지콘서트 입장권 2000장(1인2장)을 두고 5일 오후 7시부터 71시간 동안 공모한 결과 7만4000여명이 몰려 74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명지영씨(수원대 2년)는 “공모에서 떨어진 친구들이 방청권을 구하려고 여기저기에 ‘줄’을 대고 있다”고 말했다.

PC통신에는 서태지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에서 아르바이트했던 청소년들이 올린 수기가 많은 조회 건수를 보이고 있다. 거의 ‘복음 전파’에 가까운 내용들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서태지 현상’은 몇가지 관점에서 사회 문화적 의미를 지닌다. 특히 과거 서태지의 팬층인 20대 후반∼30대외에 40대 이상도 ‘덩달아’ 서태지를 입에 올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두드러진 관점은 20대 중반 이상과 10대 간의 ‘세대 헤게모니 쟁탈전’으로 보는 것이다. 기성세대는 요즘 10대 위주 댄스뮤직의 가사와 곡은 물론 가수의 이름조차 외우기 어려운 현실인데 서태지의 경우 그의 노래를 할 줄은 몰라도 이름만이라도 익숙해 안도감을 느낀다고 한다.

홍익대 김교수는 “세상 변화가 워낙 빨라 20대 중반이면 ‘기성세대’가 돼 버린다”면서 “결국 ‘서태지 코드’를 통해 ‘10대로부터 소외’ 또는 ‘시대로부터의 소외’에서 벗어나려는 기성세대의 집단 심리로 결국 이 현상은 세대간 헤게모니 쟁탈전의 성격을 띤다”고 말했다.

서태지 마니아들은 비(非)서태지 층에 대해 그의 ‘존재’ 자체를 싫어하는 것으로 해석하면서 서태지를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본다. ‘영웅’에 목마른 이 시대에 ‘그’가 돌아온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H.O.T.는 ‘스타’지만 서태지는 그 자신 영웅적 콘텐츠를 갖고 있는 ‘히어로(Hero)’”라고 말한다. 당초 우리 사회 마이너리티를 기반으로 출발한 팬들의 이같은 행동은 카를 융이 설명하는 ‘집단무의식’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새 음반의 타이틀곡 ‘울트라맨이야’를 보면 서태지는 팬들의 집단 심리를 꿰뚫어 보고 있다. ‘울트라맨이야’는 마니아가 곧 영웅이라고 주장한다. 가사는 ‘우리는 젊다/이날의 영웅은 바로 너야/미친 마니아들에 세상 밝은 미친 세상/가만 안 두리라 넌 이제 울트라의 이름의 심판 받으리라/네 잣대로 다 우릴 논하다 조만간 넌 꼭…’이라고 적개심을 드러낸다.

서태지의 팬인 연세대 조한혜정교수(사회학)는 “서태지의 팬클럽은 오히려 종교적 성격이 덜하다”면서 “대부분의 팬클럽이 기획사에 의해 조종되지만 서태지 팬클럽은 자생력이 있다”고 말한다.

한일장신대 김성기교수는 “이미 신화속 인물이 된 서태지가 현실로 돌아와 신화의 속편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 여부가 현재 서태지를 보는 대중적 관점”이라면서 “그가 과거를 재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허엽·김형찬기자>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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