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철도사는 제국주의 收奪(수탈)의 역사다. 특히 한반도를 발판으로 삼아 북방 진출에 血眼(혈안)이 됐던 일제에는 군수물자 수송이 급선무였다. 결국 갖은 협박을 가해 조정으로부터 京義線 철도 부설권을 따내게 된다. 强奪(강탈)한 것이나 다름없다.
과연 일제는 초고속으로 철도 공사를 진행시켜 만 2년 2일만인 1906년 3월 25일 경의선을 완공했다. 경인선 경부선에 이어 세번째다. 서울에서 新義州까지 총연장 499Km, 하루에 700m씩 진행한 셈이다. 자연히 拙速(졸속)이 되어 대대적으로 보수공사를 벌인 끝에 재완공을 본 것이 1911년이었다.
그 뒤 압록강철교가 개통돼 자연스럽게 서울에서 滿洲(만주)까지 연결됨으로써 그야말로 대륙 진출의 橋頭堡(교두보)를 마련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확대되자 일제는 1938년부터 경의선 복선화를 추진해 1943년 준공했다. 일제는 이 철도를 이용해 막대한 양의 군수물자를 실어 날랐다.
이처럼 우리 근대사의 상처로 남아있던 京義線은 냉전의 犧牲羊(희생양)이 되어 또 다시 분단의 아픔을 겪게 된다. 문산에서 북의 봉동까지 20여Km가 잘린 채 반세기가 지났다. 鐵馬(철마)는 달리고 싶지만 멈춰선 지 오래다.
남북화해시대를 맞아 그 京義線이 다시금 민족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단절된 구간을 남북 쌍방이 잇기로 한 것이다. 우리측도 이미 기초준비가 완료된 상태라 즉시 착공할 수 있으며 북측도 군병력을 투입하면서까지 열의를 보이고 있다. 2003년이면 완공을 볼 수 있다니 정말로 꿈만 같다.
京義線 복구는 단순히 남북을 잇는다는 의미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이 대륙에 진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중국 러시아를 통해 유럽까지 연결되는 이른바 철의 '실크로드'가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物流費(물류비)가 3분의 1로 떨어진다니 경제적인 효과가 엄청난 것이다. 한민족 跳躍(도약)의 동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478sw@mai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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