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건물과 사업장을 대상으로 ‘에너지 효율’ 진단을 실시하고 있는 에너지관리공단의 최근 진단 결과.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기업 3, 4곳을 진단한 결과 절감 가능비율은 20%에서 35%. 초기에 에너지 시설에 투자를 해야 한다는 전제이지만 업체별로 연간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분석이었다.
▼"절감투자 꼭 해야 하나"▼
그나마 이것도 꽤 눈을 떴다는 기업들의 경우다. 많은 기업들은 아직도 에너지 절감 투자를 불필요한 ‘사치’ 쯤으로 여기고 있다.
우리 기업의 ‘에너지 둔감증’은 산업구조, 정부의 정책, 저유가 상황 등이 맞물린 결과로 지적된다.
70년대 이후 정부는 중화학 장치산업 육성 전략을 편 결과 우리 산업구조는 에너지 다소비형으로 굳어졌다. 정부는 산업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저에너지가격 정책을 고수, 공장에 들어가는 연료는 싼값에 공급했다. 벙커 C유에 대한 비과세 정책 등이 그 예.
결국 ‘소비자로부터 거둔 세금으로 공장을 돌린’ 셈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 전체 제조업에서 에너지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3% 이내로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 가령 산업용 전력의 경우에도 절대가격에서 미국이 우리보다 50% 가량 비싸다.
이런 ‘변칙’이 통하던 시대는 지났다. 유가가 급등하면서 시장 원리가 작동하자 꿀맛 같던 저가격은 이제 족쇄로 ‘부메랑’이 되고 있다.
▼低에너지 가격이 이젠 족쇄▼
산자부 관계자는 “솔직히 말해서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며 저에너지가격을 유지했던 것이 장기적으론 기업들의 경쟁력을 깎아먹었다”고 말했다.
김홍경(金弘經)에너지관리공단이사장은 “절약이란 내가 지급하는 비용이 부담스럽다고 생각해야 되는 것인데 우리 기업들은 그렇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90년대 이후 우리 기업들이 ‘다운사이징’ ‘감량경영’에 앞다퉈 나설 때에도 그룹 전체의 에너지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제대로 아는 오너는 없었다.
에너지 관리공단이 지급하는 에너지 합리화 투자 지원금액은 97년 이후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올해의 경우 한 해 전체 예산 4192억원 가운데 8월말 현재 이미 4084억원이나 지출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직 멀었다”고 지적한다. 개별기업의 에너지 절감 차원이 아닌 산업구조 자체의 저소비형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산업구조자체를 바꿔야▼
선진국은 80년대 초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에너지 절약시설 투자와 에너지 가격을 시장 기능에 맡겨 에너지 저소비형 체제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은 가정 난방과 산업연료를 가격과 수급이 안정적인 액화천연가스(LNG) 중심으로 바꿨다.
이들 나라는 그 덕분에 우리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유가 쇼크에 대비한 저항력을 키웠다. 고유가시대에 에너지 효율은 곧 국가의 경쟁력이 되고 있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