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독서]김수영의 시세계

  • 입력 2000년 9월 15일 19시 01분


“사랑의 마음에서 나온 自由는 여하한 행동도 방종이라고 볼 수 없지만, 사랑이 아닌 自由는 방종이다.”

김수영(金洙暎·1921∼1968). 가장 치열했던 시인의 한 사람. 모두 잠들었던 황량한 시대에 홀로 깨어나 자유를 갈구하고 사랑을 노래했던 시인. 그는 자유의 시인, 자유인의 초상이다.

강렬한 현실의식과 치열한 저항정신, 지성과 감성의 조화,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행복한 만남, 그리고 새로운 시형식의 개척 등 김수영은 한국 현대시의 서막을 활짝 연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소시민적 지식인의 자의식을 거짓없이 드러내고 생활인의 실존적 모습을 시로 형상화했다. 그로 인해 김수영의 시에선 관념과 현실이 만나 팽팽히 긴장한다. 그 긴장감이 시를 아름답게 한다.

1960년대 억압의 시대에, 자유와 민주를 위한 비판적 저항 정신의 끈을 놓지 않았던 김수영. 그 근저에 흐르는 정신은 역시 자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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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숲까지 거닐었던 시인 김수영

문화관광부는 김수영을 ‘9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다. 이를 기념해 최근 발행된 ‘풍자와 해탈 혹은 사랑과 죽음―김수영론’. 김수영의 치열하고도 따스한 시세계를 소개한다.

<풀>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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