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전남 화순 명문가에서 태어난 오화백은 일본 유학에서 프랑스 정통 인상파의 기법을 익힌 뒤 1931년 귀국, 김주경과 함께 ‘한국적 인상파’의 출발을 선언했다. 어둡고 중간 색조 위주의 일본과는 달리 밝은 원색을 사용한 것이 특징. 한국의 청명한 날씨와 자연 풍광을 표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방식이라고 본 것이다.
1938년 국내 최초의 원색화집인 ‘오지호 김주경 2인화집’을 내 미술계를 놀라게 했고, 1948년 이후 전남 광주에 정착해 무등산 자락의 12평짜리 초가에 줄곳 기거하면서 호남의 정감어린 시골 풍경과 산야, 바다의 풍광을 열정적으로 캔버스에 담아냈다.
이번 전시회에는 향토색 넘친 40년대와 흥취어린 색채와 필체가 돋보인 50년대, 붓놀림이 더욱 중후해진 60년대, 두 차례의 해외여행을 다녀와 과감한 생략법을 구사한 말년의 작품등이 망라됐다. 탁월한 미술 이론가이기도 했던 그는 1930년대 국내에 피카소를 본격적으로 처음 소개했고, 1939년 동아일보에 피카소에 대한 과대평가를 비판하는 글을 발표해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1959년 비구상회화를 인정하지 않는 ‘구상회화선언’을 발표, 파문을 일으켰고 말년에는 한글일변도 정책에 반대해 그림을 판 돈으로 열정적으로 한자병용운동을 전개하는 등 시대의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지조의 화가였다.
한국 화단의 원로와 중진으로 성장한 아들 승우와 승윤이 화맥을 잇고 있고, 손자 손녀 중에도 화가 조각가 미술 평론가가 줄줄이 이어져 가히 미술 명가(名家)를 이루고 있다.
<오명철기자>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