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도 그는 경찰들이 보기에 너무나 위험한 인물이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 노구치(호리베 케이스케) 때문이다. 노구치는 어린 시절 사와키와 함께 먼 훗날의 꿈을 공유하던 아이. 그러나 이제는 '다카쿠라 켄'을 우상으로 떠받드는 야쿠자로 성장해 있다. '오야붕'의 신임을 얻기 위해 손가락을 자르고 마약 밀매에 손을 댄 위험한 인물이기도 하다.
사와키는 야쿠자의 집에서 단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말하고 나왔을 뿐인데, 삶은 180도로 변한다. 야쿠자와의 접촉 의혹을 받고 경찰의 레이더망에 걸려든 것이다.
이때 사부 감독은 엉뚱하게 흘러가는 사건의 경로를 다시 한 번 비틀어 난장판 미학을 선보인다. 마치 1000피스 짜리 복잡한 퍼즐을 던져주듯, 사건을 '여기 저기서' 발생시키는 것이다.
<포스트맨 블루스>의 주인공은 우편 배달부 한 사람인 듯하다가 야쿠자, 죽음을 앞둔 킬러(오스기 렌), 시한부 소녀(토오야마 쿄코) 등으로 점차 늘어난다. 이 인물들이 각각의 사연을 갖고 엄청난 사건을 만들어내며,별개의 거리에서 우편 배달부를 쫓는 경찰의 시선이 움직인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 어디 사연 없는 이가 있겠냐만은, 주인공과 완전히 동떨어진 곳에서 존재하는 조연들의 사연 또한 하나의 영화로 만들어도 될 만큼 거창하다. 야쿠자인 노구치는 동료 야쿠자의 마약을 빼돌렸다가 손가락을 잘릴 위기에 몰려 있고, 병원 옥상에서 만난 '킬러 조'는 "암 세포라는 킬러에게 죽임을 당할" 운명에 놓여있다. 킬러 조가 만난 또 다른 킬러는 "절대 여자는 킬러가 될 수 없다"는 충고를 물리치고 <중경삼림>의 임청하를 모방한 킬러로 거듭난 인물. 평범한 캐릭터와 튀는 캐릭터들이 맞부딪치면서 벌어지는 사건은 황당할 만큼 웃기고 재미있다.
덕분에 <포스트맨 블루스>는 만화 커트처럼 자유분방하고 액션영화처럼 스피디한 영화로 완성됐다. 그러나 정작 주인공인 우편배달부는 영화의 속도전에 편승하지 않고 의젓한 자세로 일관한다. 그는 자신이 경찰의 레이더망에 걸려든 줄도 모른 채 시한부 인생을 사는 소녀 사요코와 데이트를 즐기고, 야쿠자, 킬러 등 이른바 위험 인물들과 우정을 나눈다.
그런데도 사와키가 연신 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물 밑에서 진행되는 사건을 직시해서가 아니라 '킬러 선발대회 우승' 소식을 빨리 알려주기 위해서, 혹은 사요코와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을 정확히 지키기 위해서다.
영화는 이렇듯 아무 연관 없어 보이는 각각의 사건을 그냥 방치하지만은 않는다. 라스트신에 이를 즈음엔 복잡했던 퍼즐이 맞춰지듯, 각각의 사연들이 제 자리를 찾고 하나의 고리 안에 묶인다. 이건 분명 사부 감독의 천재적인 재능이다.
그러나 사와키와 사요코가 영혼으로 거듭나는 라스트 신은 약간 뜬금이 없다. 코믹 액션으로 일관하던 영화가 갑자기 <사랑과 영혼>류의 판타지 영화로 돌변하는 이유는 뭘까. 경찰과 사와키가 대치하는 결말은 언뜻 <델마와 루이스>의 라스트신을 연상시킬 만큼 비장해 보이지만, 이 영화는 전복의 의지 대신 질긴 순정만 남겨 놓았다.
황희연 <동아닷컴 기자> 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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