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혁명의 날카로운 검(劍)이요, 살아 있는 불꽃이었다.”
로자는 마르크스를 극복한 마르크스주의자다. 그녀는 ‘현실을 전체로서’ 움켜잡으려 했다. 도그마를 거부했고 혁명에 대한 이론과 실천의 밀접한 연계를 찾았다. 이런 점에서 게오르그 루카치가 지적했듯이 로자는 제2인터내셔널의 마르크스 후계자들과는 달랐다. ‘자본론’이 순수 형태의 자본주의의 내재적 운동법칙을 밝혀 놓았다면, 로자의 ‘자본축적론’은 일국 수준의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다이나믹한 세계자본주의 경제를 하나의 전체로 파악했던 것이다.
“자체의 생존과 지속된 발전을 보장하기 위해, 자본주의는 비자본주의적 생산형태들을 자신의 주변환경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는 이런 환경을 찾아내는 한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잉여가치의 투자시장으로서, 생산수단의 원천으로서, 저임금 노동력의 저장고로서 제3세계의 저발전과 후진성을 요구한다. 주변부의 후진성이 누적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면 중심부의 자본축적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세계자본주의체제의 본질을 꿰뚫은 이처럼 뛰어난 통찰력도 학문적으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로자는 레닌의 혁명적 실천의지를 유럽 중심부인 독일에 도입했다. 그러나 볼셰비즘에 회의를 나타냈고, 레닌의 민족자결주의와는 심각한 마찰을 빚었다. 레닌은 후진 러시아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해 혁명적 엘리트의 전위당을 중심으로 노농계급혁명을 일궈냈다. 로자는 러시아 혁명의 대의를 긍정하면서도 러시아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사용됐던 방법들은 다른 사회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로자는 대중의 창의성과 자발성을 믿었다. 이런 신념으로 프롤레타리아의 성숙한 계급의식과 순수성을 강조하는 계급근본주의의 입장을 일생 견지했다. 더욱이 프롤레타리아가 민족주의적 본능을 극복하리라고 믿었기에 더욱 더 혁명적 국제주의에 집착했다. 로자의 예견대로 볼셰비즘은 마침내 ‘관료주의적 타락’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 민중의 민족해방의 열정에 대한 이해는 그녀의 노동계급 중심적 사고 뒤편에 묻히고 마는 아쉬움을 남겼다.
탁월한 사상가는 실천을 결여하기 쉽다. 실천적 혁명가에게 체계적 사상을 기대하기는 더욱 어렵다. ‘생애와 사상’이라는 부제의 이 책은 역시 독일의 혁명가였던 저자가 프랑스 망명생활 중에 쓴 것으로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과 혁명적 실천의 진면목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 역작이다. 초판은 제2차 세계대전 전에 출간돼 상당한 관심을 끌었고, 그 후 로자 연구 방면에서 불후의 고전으로 자리잡았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시대, 무뇌(無腦)의 시대에 빼앗긴 자와 억눌린 자의 자유를 위해 저 하늘 높이 비상했던 ‘독수리’의 이상을 만난다는 것은 행운이다. 최민영·정민 옮김, 400쪽, 1만2000원
조 민(통일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