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직굵직한 뉴스들이 많은 날. 우선 올 11월18일 결혼 예정인 세기의 커플 캐서린 제타 존스(69)와 마이클 더글러스(44)의 생일이 바로 이 날이다. 수많은 여배우들과 염문을 뿌리며 천하의 바람기를 뽐내던 마이클 더글러스와 그를 낚은 캐서린 제타존스의 생일이 같은 걸 보면 천생연분이 따로 없는 것 같다.
워낙 여자를 손쉽게 갈아치우는 마이클 더글러스인데다 이혼했을 경우의 위자료까지 계산하고 결혼한 커플인지라 이들의 미래가 순탄할지는 미지수.
이 날 태어난 또 다른 스타는 할리우드의 댄디보이 윌 스미스(68). 부잣집 막내아들 같기도 하고 뒷골목 갱 같기도 한 그는 경쾌한 랩퍼에서 전투기 조종사로, 말쑥한 신참내기 비밀 요원에서 서부의 총잡이로 깔끔하게 변신한다. 할리우드 만능 엔터테이너의 오리지널 버전이라고 하면 적당할까.
17세 때 'DJ 제지 제프와 프레시 프린스'라는 2인조 랩 그룹으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그래미상을 두 차례,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를 세 차례나 수상한 실력파이기도 하다.
<흔들리는 영웅>(92) <5번가의 플포이어티>(93)에 출연하면서 연기자의 길에 들어선 그는 95년 액션 코미디 영화 <나쁜 녀석들>로 95년 최고의 흥행 기록을 수립하며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흥행 귀재 돈 심슨과 제리 부룩하이머가 제작을, 세계 주요 광고제를 석권한 감각파 감독 마이클 베이가 연출을 맡은 이 영화로 요란하게 할리우드 입성 신고식을 치른 것.
<인디펜던스 데이> <맨 인 블랙>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로 잇따라 박스 오피스를 석권한 그는 "훌륭한 가수지만 배우로서의 자질은 아직 미지수"라는 평가를 뒤집어 버렸다.
윌 스미스는 또한 흑인이란 약점을 절묘하게 활용한 배우이기도 하다. "할리우드에선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언가 새롭게 받아들여질 요소가 충분하다. 내가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를 찍은 것도 신선하고 새롭게 보일 것이다. 만약에 톰 크루즈가 이 역을 연기했다면 재탕처럼 보였을지 모른다"고 말했을 정도.
한편 <맨 인 블랙>의 타이틀곡까지 부른 그는 98년 첫 솔로 앨범 'Big Will Style'로 각종 음악제에서 상을 휩쓸었으며, 혹평을 받은 99년작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의 타이틀곡 역시 히트 넘버를 기록해 배우와 가수 겸업에도 성공했다.
할리우드의 인기 판도를 장악하고 있는 윌 스미스의 희망은 미국 최고의 흑인 대통령이라는데~. 현재 '오버브룩 엔터테인먼트(Overbrook Entertainment)'라는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그는 무하마드 알리의 전기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다. 이번엔 얼마나 강한 펀치를 날릴지 궁금하다.
◆9월 26일 화요일
<터미네이터>에서 우람한 근육과 힘을 자랑했던 린다 헤밀턴(56)이 태어난 날. 그렇지만 이 날의 최고 화제는 단연 미스 아메리카 출신의 바네사 윌리엄스와 릭 폭스가 결혼한(99) 소식이다.
바네사처럼 팔방미인이라는 수식어가 딱 들어맞는 여배우가 또 있을까? 흑인 최초의 미스 아메리카로 4개의 히트 음반을 냈고 그래미상 9개 부문 후보에 오른 그녀는 영화는 물론 브로드웨이 뮤지컬 무대에서도 활동하는 전천후 엔터네이너다.
미모 만큼이나 탁월한 그녀의 재능은 결코 신이 선물한 것만은 아니다. 어렸을 적부터 음악 교사인 부모님에게 엄격한 트레이닝을 받았으니까. 악기는 물론 춤, 노래 등 다양한 예술 교육을 받았고 학교 밴드와 합창단의 단골 주연을 맡았다. 그래서일까? 고교를 졸업하면서 졸업 도감에 남긴 말 "브로드웨이에서 봐요"는 허황된 큰소리가 아니라 당찬 자신감의 표명으로 보인다.
시라큐스대에서 뮤지컬을 전공하던 스무 살 무렵 흑인 최초로 '미스 아메리카'의 왕관을 쓴 바네사는 그러나 무명 시절 찍은 사진이 <펜트하우스>에 실리면서 왕관을 박탈당한다.
그러나 그녀는 오뚜기였다. 회생 불가능하게 보였으나 88년 발표한 첫 음반 "The Right Stuff"이 100만장 이상 팔리면서 기사회생한다. 척 러셀 감독의 <이레이저>에 출연하면서 연기 인생에도 일대 전환을 맡는다. 아놀드 슈왈츠네거의 상대역으로 캐스팅할 생각이 없다는 통보를 받은 그녀는 곧바로 LA로 달려가 감독을 설득해 어렵게 그 역을 따냈다.
만능 엔터네이너로서 그녀의 매력이 빛을 발한 건 영화 <댄스 위드 미>에서였다. 라틴 댄스를 매혹적으로 추는 걸 보면 그녀가 30대 중반의 세 아이 엄마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외모 만큼이나 아름다운 의지, 연기를 향한 불타는 열정이야말로 그녀의 오늘을 만든 게 아닐까.
◆9월 28일 목요일
할리우드 최고의 여배우들이 무리 지어 세상에 나온 날이다. 기네스 펠트로(73), 미라 소비노(67), 브리짓 바르도(34) 가 그 주인공. <소년은 울지 않는다>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힐러리 스웽크와 채드 로의 결혼식(97)도 이 날 열렸다.
재미있는 것은 힐러리가 <소년은 울지 않는다>에서 남장 여자를 연기할 때 남편 채드가 그녀 옆에 항상 붙어 다니며 '여성임'을 환기시켜 주었다는 사실. 그런데 아카데미 시상식 날 흥분한 힐러리는 수상 소감에서 정작 남편의 이름을 빼먹는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나!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유망 주식 종목으로 치자면 블루칩이나 다름없는 기네스 펠트로. 유명한 감독이자 프로듀서인 블루스 팰트로와 여배우 블리드 대너의 딸인 그녀는 아버지와 인연이 깊었던 스티븐 스필버그와의 대면으로 91년작 <후크>에서 어린 웬디 역으로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93년 출연한 <악몽>은 '뜨기 전'의 기네스 팰트로를 감상할 수 있는 영화다. 180cm의 마르고 큰 키에 선글라스로 장난기 어린 눈빛을 감춘 소매치기 여인 지니가 그녀다.
브래드 피트와 공연한 95년작 <세븐>은 그녀의 삶에 중요한 전기가 됐다. 할리우드 최고의 미남 스타인 브래드 피트를 '제 것'으로 챙겼으며, 배우로서 진가를 드디어 인정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97년 브래드 피트와 결별한 후 오히려 주가가 상승한 그녀. 촉망받는 신예 밴 애플렉과의 열애를 비롯, 수많은 배우들과 염문을 뿌렸던 그녀는 '스타 헌터'라는 닉네임까지 얻게 되었다.
<엠마> <위대한 유산> <퍼펙트 머더> <슬라이딩 도어즈> 등의 주연급으로 자리매김한 그녀는 <셰익스피어 인 러브>로 99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차지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9월 30일 토요일
영원한 청춘의 아이콘 제임스 딘이 사망한(55) 날. 제임스 딘은 활동하는 동안 단 세 편의 필름만을 남긴 배우. <에덴의 동쪽> <이유 없는 반항> <자이언트>. 그러나 세 편의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모습보다 더 멋진 이미지로 세인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있는 억세게 재수 좋은 남자다.
제임스 딘은 1931년 2월8일에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제임스 바이런 딘. 영국 시인 바이런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어렸을 때 바이올린, 탭댄스, 그림, 조각에 능했던 그는 십대 시절 페어마운트 고등학교에서 연극 배우로 활동했으며 캘리포니아로 건너와 산타모니카 주니어 칼리지와 UCLA를 다녔다.
대학 시절 그의 첫 번째 직업은 펩시콜라 광고 모델. 이후 단역배우 활동을 시작한 그는 스크린 데뷔작에서 단 한마디의 대사마저 편집에서 잘리고 마는 쓰라린 경험을 했다. 그러나 UCLA에서 연기 워크숍을 경영했던 제임스 위트모어의 충고로 뉴욕에 진출, 본격적인 무대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제임스 딘은 말론 브랜도 등 스타를 배출한 액터스 스튜디오의 무대에서 재능을 인정받아 브로드웨이와 TV에서 명성을 쌓았으며 곧 할리우드로 진출하게 되었다. 곧 존 스타인백 원작의 <에덴의 동쪽> 촬영을 시작한 그는 포르쉐를 몰며 카레이스를 즐기고 젊음을 대변했고 이 영화로 단박에 반항적인 청춘의 우상이 되었다. <이유 없는 반항>에 이어 출연한 <자이언트>는 그의 유작이 되고 말았다. 그때 나이 24세였다.
정해연(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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