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여성’에 대한 가지가지의, 여성으로서 불유쾌한, 질문에 대해 저자는 폭넓은 해답찾기를 모색한다. 1부는 ‘왜 위대한 음악가는 모두 남성인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한다.
오늘날 일반적인 여성 바이올리니스트나 첼리스트, 플루티스트가 19세기 중반까지 ‘정숙하지 못하게 보인다’는 등의 이유로 금기시됐다는 사실은 사뭇 흥미롭다. 그러나 ‘여성 대작곡가가 탄생하지 못한 것은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가부장제 때문’이라는 결론은 지나치게 평범해 보인다. 오히려 ‘남성만이 성 에너지를 발산하듯 창작의 에너지를 발산한다’는 알렉산더 엘스터의 견해가 더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 역사상 문학 미술 분야에서 수많은 여성이 걸작을 남겨온 것과 대비, 작곡분야에서 여성이 저조했던 이유를 이 책은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하는 듯하다. 문인이나 미술가에 비해 작곡가들이 출판사, 공연장, 연주자, 비평가 등과 상대하며 훨씬 넓은 폭의 ‘사회적 인정(認定)투쟁’에 관련되어야 했던 때문은 아니었을까.
2부에서 저자는 ‘음악 속에 나타난 굴절된 여성 이미지’를 문제풀이의 대상으로 삼는다. ‘오페라 발레 등에 나타나는 여성의 희생적 역할’ 을 문제삼는 부분은 아무래도 밀도가 떨어지는 느낌. 음악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음악과 결합한 문학 텍스트의 문제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하이든이 아담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활동적인 3도 음정과 점리듬, 이브를 나타낸 수동적인 2도 음정과 계류음’ 등 음악적 구조에 확대경을 들이댄 부분이 더욱 분명히 눈에 들어온다.
페미니즘적 음악정전(正典)의 수립을 논하면서 저자가 ‘음악의 클라이맥스는 남성적 오르가슴의 재현이다’라고 표현한 부분은 절반의 진실일 수 있다. 푸치니 ‘투란도트’ 중 ‘잠들지 말라’에서 주인공 칼라프가 ‘승리하리라(Vincero)’라고 외치는 고음의 클라이맥스는 실제로 남자의 정복욕을 자극하는 오르가슴적 절정일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역시 남자인 바그너가 작곡한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사랑의 죽음’은 어떤가. 고조되다가 잦아들기를 반복하는 그 간헐적 클라이맥스는 오히려 ‘여성적’인 것은 아닐까.
전체적으로 치밀한 논증을 의도하기 보다는 문제제기에 초점을 둔 ‘시론(Study)’으로서 이 책이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제기 자체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음악과 페미니즘/민은기 지음/음악세계/112쪽 7000원▽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