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한순간 안보이는 숲이 된다는 것은/(…)나는 것과 정지되어 있는 것의/혈액을 동시에 수혈받고 싶어서일 것이다’(안 보이는 숲)라는 구절에서처럼, 채워짐은 주로 ‘수혈’로 형상화된다. 주고받음을 통해 텅 비워지는 쪽은 없다. ‘사람의 무게만 희고 파래져서 돌아갈 뿐/산의 무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질량 보존의 법칙 1―봄산).
위 시의 제목을 눈여겨 볼 일이다. 왜 무게에 변화가 없는가? 인간과 자연이 주고받은 것은 기(氣) 이며, 체액조차 기실 무게 없는 기의 형상에 다름아닌 것. ‘내 맑은 취기로 드넓은 세상/단 한순간만이라도 취중득도시킬 수 있다면’이라고 읊을 때, 취기 역시 기 아니던가. 나눔으로서 ‘한순간’ 충만한 세상. 시인이 꾸는 꿈이다.
박라연은 1990년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했다. 이 번이 네 번째 시집.
□공중 속의 내 정원/박라연/문학과지성사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