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작품은 총 211편. 이 많은 영화들 중 도대체 무엇을 골라 봐야 할지 난감한 사람들을 위해 동아닷컴이 작은 가이드북을 마련했다. 세계적인 명감독들과 스타 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를 중심으로 12편의 작품을 소개한다.>>(편집자 주)
◆화양연화 In the Mood for Love
감독 왕가위/러닝타임 97분/제작 홍콩/상영일시 10월14일 7시
<화양연화>는 <아비정전>의 후일담 같은 영화다. <아비정전>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허해지는 사랑의 아이러니를 애처로운 시선으로 담아낸 왕가위 감독은, 원래 이 영화를 2부작으로 만들 계획이었다. 주연으로 내정된 배우는 장만옥과 양조위. 그러나 <아비정전>이 흥행에 실패한 후 이 프로젝트는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고 10년 만에야 겨우 영화화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화양연화>는 <아비정전>과 시리즈로 묶이지 않는 독자적인 영화다. 60년대 홍콩이 배경이라는 것과 장국영을 제외한 나머지 주연배우가 모두 출연한다는 점만 비슷할 뿐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지역신문 편집장인 차우와 무역회사 비서인 리첸이 배우자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후 자신들 역시 어긋난 사랑에 빠져들게 되는 이야기. 왕가위 감독의 분신과도 같은 배우 양조위는 이 영화로 올해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여름의 수직선에서 A La Verticale de L'ete
감독 트란 안 홍/러닝타임 115분/제작 베트남, 프랑스/상영일시 10월7일 2시, 9일 8시
<그린 파파야 향기> <씨클로>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베트남 출신 감독 트란 안 홍의 신작. 전작과 마찬가지로 트란 안 홍 감독의 카메라는 베트남의 너저분한 일상을 빠져나가지 못한 채 그 길목 어귀에서 서성거린다. 베트남 제2의 도시 하노이에서 살아가는 세 자매와 친지들의 고단한 삶의 이야기. 세 자매가 어머니 기일에 다시 만나 그 동안 간직해두었던 비밀을 공개하면서 평온했던 여름의 일상은 잠시 수직선 위에 선 듯 위태로워진다. 그러나 단지 그뿐이다. 세 자매가 겪는 위험한 하루는 휘청거리다 금세 제자리를 찾는다. 가족이라는 굴레의 속성이 흔히 그렇듯이.
◆하나 그리고 둘 A One and a Two
감독 에드워드 양/러닝타임 179분/제작 대만/상영일시 10월10일 11시, 12일 2시
결혼식과 장례식은 완전히 다른 뉘앙스를 갖고 있으면서도 '따로 또 같은' 하나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누구나 한 번씩 거쳐가는 정거장과도 같은 것.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으로 유명한 대만 감독 에드워드 양은 결혼식과 장례식을 앞뒤로 배치하고, 그 안에 의식불명의 어머니를 살리기 위한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아냄으로써 "삶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에드워드 양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삶은 곧 순환이라는 것. 돌고 돌아가는 원형의 삶이 바로 인생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알려준다. 리얼리즘의 진수가 담겨 있는 이 영화는 올 칸영화제에 초청되어 많은 화제를 모았다.
◆집으로 가는 길 The Road Home
감독 장이모/러닝타임 100분/제작 중국/상영일시 10월7일 8시, 10일 2시
첸 카이거와 더불어 중국 5세대 감독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장이모 감독의 신작. <붉은 수수밭>으로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했고, <인생>으로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던 장이모는 중국 본토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진가를 인정받는 감독이다. <책상서랍 속의 동화>에서 아이들의 순진한 우정을 단아한 영상으로 포착했던 그는 <집으로 가는 길>에서도 여전히 순수하고 맑은 이야기에 머무른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묵직한 아픔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온 한 남자가 도보로 아버지의 시신을 운반하면서 나이든 세대의 억눌린 삶을 이해하게 된다는 이야기. 이 영화는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했다.
◆고하토 Ghohato
감독 오시마 나기사/러닝타임 100분/제작 일본/상영일시 10월8일 6시, 12일 9시
<감각의 제국>으로 전세계에 예술과 외설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고희의 나이에 또 다시 도발적인 주제로 돌아왔다. <막스 내 사랑> 이후 14년만에 내놓은 신작 <고하토>는 일본이 미국에 강제 개항 당했던 1865년, 무사로 활동했던 '신선조'의 질투와 애증을 담아낸 문제작. 신선조가 사실은 부랑자 집단일 뿐이라고 설파는 것도 의미심장하지만, 그것보다 더 재미있는 건 이 영화의 내용이 신산족 사이의 동성애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유명한 코미디언이자 세계적인 감독 겸 배우인 기타노 다케시가 배우로 출연하며, 사카모토 류이치가 영화음악을 맡았다.
◆빵과 장미 Bread and Roses
감독 켄 로치/러닝타임 110분/제작 영국/상영일시 10월7일, 8일 11시
<하층민> <레이디버드 레이디버드> <랜드 앤 프리덤> <레이닝 스톤> 등 주로 노동자들의 삶을 냉정한 시선으로 고발해왔던 켄 로치 감독의 신작. 이번 영화에서 그가 관심을 갖고 접근한 주제는 소수민족의 삶이다. 라틴계 미국 이주민이자 밀입국자인 마야는 일자리가 없어 굶어죽을 지경에 놓인 인물. 먼저 입국해 있던 언니의 도움으로 어렵게 건물 청소부 자리를 얻지만, 노동의 대가는 지독하리 만치 참혹하다. 미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를 묻고 있는 이 영화는, 켄 로치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한 편의 영화라기보다 사회의 부정부패를 고발하는 현실 보고서다.
◆귀신이 온다 Devils on the Door Step
감독 강문/러닝타임 160분/제작 중국/상영일시 10월9일 8시30분, 11일 4시30분
시에진 감독의 <부용진>, 장이모 감독의 <붉은 수수밭> 등에서 배우로 활약했던 강문은 94년 <햇빛 쏟아지던 날들>로 연출 데뷔, 세계적인 유명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햇빛 쏟아지던 날들>은 중국의 역사적 소용돌이 안에서 한 소년이 겪었던 유년의 기억을 투명한 아름다움으로 담아낸 작품. 강문의 두 번째 연출작인 <귀신이 온다> 역시 중국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은 내용이다.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는 중국 오지 마을에 갑자기 일본군 포로와 중국인 통역이 손발이 묶인 채 커다란 자루에 담겨 던져진다. 이들을 헛간에 숨겨둘 수 밖에 없게 된 주인공 남자(강문)와 마을 사람들은 골머리를 앓는데.... <귀신이 온다>는 정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내용으로 중국에선 개봉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운명 Les Destinees Sentimentales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러닝타임 174분/제작 프랑스/상영일시 10월11일 8시, 13일 5시
영화보다 장만옥의 남편으로 더 잘 알려진 프랑스 감독 올리베이 아사야스가 연출한 시대극. 자크 사르돈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 한 <운명>은 명망이 두터웠던 목사 장이 20세 처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냉혹한 사업가로 변모하기까지, 굴곡 많은 삶의 여정을 생생히 담아낸다. <금지된 사랑> <누드 모델> 등으로 유명한 엠마누엘 베아르와 <마담 보바리>의 히로인 이자벨 위페르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어 호평을 받았다.
◆라이미 The Limey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러닝타임 90분/제작 미국/상영일시 10월12일 11시, 10월13일 5시30분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로 약관 25세의 나이에 칸영화제 대상을 거머쥐었던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오랜만에 인디펜던트 영화계로 귀환해 만들어낸 작품이다. 무장강도로 9년 동안 감옥에 수감됐던 영국인 남자 윌슨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딸의 소식을 듣고 범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L.A에 도착한 윌슨은 딸의 죽음이 마약상 발렌타인의 음모 때문임을 알게 되며, 딸의 억울한 한을 풀어주기 위해 복수를 결심한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스릴러와 범죄 액션이 적절히 섞여있는 이 영화로 '아직 천재는 죽지 않았음'을 알렸다.
◆밀리언 달러 호텔 The Million Dollar Hotel
감독 빔 벤더스/상영일시 121분/제작 독일, 미국/상영일시 10월7일 7시30분, 13일 8시
<파리, 텍사스> <베를린 천사의 시> 등을 연출했던 작가주의 감독 빔 벤더스는 2000년을 맞아 자신의 작업 방식에 대대적인 체질개선을 시도했다. 필름 대신 디지털 카메라로 영화를 만들어 평단의 우호적인 평가를 받아낸 것. 나이든 쿠바 음악가들의 삶을 진솔하게 담아낸 <브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이후 빔 벤더스 감독이 새롭게 연출한 디지털 영화는 <밀리언 달러 호텔>이다. 이 영화는 멜 깁슨, 밀라 요보비치, 팀 로스, 제레미 아이언스 등 할리우드 톱클래스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제작 전부터 이미 화제를 모았던 작품. 밀리언 달러 호텔 옥상에서 투신 자살한 청년 이지가 사실은 백만장자의 아들이었다는 게 밝혀지면서 시작되는 FBI의 치밀한 수사과정 전말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수사가 진행될 수록 사건은 미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점점 더 복잡해진다.
◆생 피에르의 미망인 The Widow of Saint-Pierre
감독 파트리스 르콩트/러닝타임 112분/프랑스/상영일시 10월7일, 12일 11시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걸 온 더 브릿지> 등을 연출한 파트리스 르콩트 감독의 신작. 아름다운 프랑스 여배우 줄리엣 비노쉬의 명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 이외에도, 이 영화엔 볼거리가 즐비하다. 발칸 반도의 역사를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담아낸 <집시의 시간>의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이 이 영화의 배우로 출연하고 있기 때문. 캐나다 근처에 위치한 프랑스의 작은 섬 생 피에르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 사건과 이상한 사랑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살인자 닐이 섬의 유명인으로 돌변하는 상황을 위트 있게 담아내고 있다.
◆오! 형제여! 나의 형제여 O Brother, Where Art Thou?
감독 조엘 코엔/러닝타임 102분/제작 미국/상영일시 10월13일 7시
<분노의 저격자> <밀러스 크로싱> <아리조나 유괴사건> <바톤 핑크> 등 발표작마다 재치 있는 농담과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여타 감독들을 주눅들게 만들었던 코엔 형제는 이 영화로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했다. 게다가 <오! 형제여! 나의 형제여>는 <더 록><쇼생크 탈출>과 더불어 탈옥 영화의 계보를 잇고 있기도 하다. 뮤지컬로 진행되는 탈옥영화는 얼마나 재미있는 발상인가. 뮤지컬의 가벼움 안에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진지한 물음을 담고 있는 이 영화는 일찍이 본 적 없는 새로움으로 관객들을 자극할 것이다. 범죄자 에버렛 율리시즈 맥길이 모자란 죄수 델마와 피트를 꼬드겨 탈옥을 시도하고, 그를 뒤쫓는 보안관 쿨리의 추적이 가세하면서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이야기. 조지 클루니와 존 터투로가 주연을 맡아 열연했다.
황희연 <동아닷컴 기자> 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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