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간의 공백 끝에 무대에 돌아온 박지윤의 모습은 놀라움과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온통 검게 물들인 짧은 머리, 검푸른 빛이 감도는 유혹적인 입술, 거기에 배꼽이 드러난 상의와 허벅지까지 트인 긴 치마. 외모와 함께 변한 건 그녀의 춤동작. 강렬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다리에서 가슴까지 훑어 올라가는 그녀의 뇌쇄적인 안무는 예전의 박지윤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가히 충격에 가까운 놀라움을 안겨줬다.
“앨범 타이틀곡이 ‘성인식’이잖아요. ‘이제 더이상 소녀가 아닌 여자’라는 가사가 바로 제 얘기이기도 하고, 노래에 맞게 분위기를 연출하다보니 어느 정도 노출도 필요했어요.” 그러나 박지윤이 의도한 섹시함은 원색적인 노출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노래 분위기나 춤, 표정, 느낌으로 전달되는 것이었다.
‘뻣뻣한 나무막대기 같다’는 소리를 듣던 그녀가 지금처럼 멋진 춤을 출 수 있게 되기까지 들인 노력은 눈물겨운 것이었다. 프로듀서 박진영의 지도로 6개월간 춤 연습에 매달렸던 그녀는, 평소 안 쓰던 관절을 무리하게 늘리며 춤을 추다 몸살이 나서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고. 그러던 어느 순간 득도(?)의 경지에 이르러서는 몸 전체로 율동을 타며 손짓 하나, 눈빛 하나에도 감정을 실어 관능적이면서도 세련된 그녀만의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이런 변화를 달갑지 않게 보는 사람들도 있다. 얼마 전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는 ‘성인식’에 대해 지상파 3사에 방영금지 요청 공문을 보냈다. ‘기독교…’ 측은 “박지윤의 노래가 20세가 된 여자가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갖기 바란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청소년들의 성에 대한 가치관을 왜곡하고 정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인지 SBS에서는 ‘성인식’의 뮤직비디오에 대해 방영 금지 처분을 내렸고, 무대공연시 선정적인 의상 착용을 자제해줄 것을 박지윤측에 요청해왔다.
박지윤을 만난 날은 MBC 가요프로그램 ‘음악캠프’ 생방송이 있던 날이었는데, 방송국에 도착한 박지윤과 백댄서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상의 안에 옷을 하나씩 덧입어 배꼽을 가리고, 스커트 옆선을 무릎까지 꿰매는 일이었다. “많이 속상해요. 꼭 그렇게 볼 필요가 있는 건지… 시대가 달라지면 유행이나 사고도 따라서 변하는 건데,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변화를 두려워하고 막으려고만 하는 것 같아요. 다양함을 인정하고 변화를 수용하는 열린 사회가 됐으면 해요.”
8월 말 내놓은 박지윤의 새 앨범은 벌써 판매량 35만장을 넘어섰다. 조성모와 서태지 등 대형가수들의 돌풍 속에서도 어린 그녀는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통해 자신의 음악에 대한 자신감을 얻는 박지윤은 ‘좋은 음악’을 목표로 흔들림없이 나아간다.
“어리다고 해서, 그저 주위에서 만들어낸 기획상품이다 라는 식으로 생각지 말아주셨으면 해요. 예쁘게 노래만 하는 가수가 아닌, 노력하는 ‘아티스트’로 인정받고 싶어요.” 그녀는 외모만큼이나 정신도 훌쩍 큰, 진짜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신을진 기자 happyend@donga.com (주간동아 254호)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