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종래의 철학,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통적 형이상학을 철저히 비판하고 극복해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연 사람이기 때문이다.
후기작품 모음집인 ‘동일성과 차이’에서 하이데거는 우선 논리학의 가장 기본적 사유법칙인 동일률(A〓A)을 문제삼아, 동일률을 가능케 하는 존재론적 차원, 즉 동일성의 본질 유래를 추적한다. 동일성은 논리적 문제이기 전에 존재론적이며 형이상학적 문제지만, 동일성을 형이상학적으로 규정한다고 해서 동일성의 본질이 충분히 해명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동일성의 본질 유래는 존재가 생겨나는 차원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는 지금까지 사유해 온 방식과는 완연히 다르게 사유하게 된다.
그의 다른 저서인 ‘존재와 시간’(1927)의 논의와 비교해 말하자면, 이것은 어떤 사태에 대한 진술로서의 명제적 진리(칠판은 녹색이다)보다 존재론적 진리(칠판이 드러나는 사건 또는 더 나아가서 칠판이 드러날 수 있는 터전)가 더 근원적이라고 하는 주장과 비슷한 맥락이다.
또한 ‘차이’는 근거와 근거지어진 것을 구별하는 것으로서 형이상학의 본질적 특징을 나타낸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이런 형이상학의 특징은 ‘존재―신―론적’ 사유에서 완성된다. 존재―신―론적 사유는 총체를, 모든 것 위에 존재하는 최고의 존재자를 근거 짓는 사유다.
존재―신―론이라고 규정되는 형이상학은 존재(있음)와 존재자(있는 것)의 차이를 제대로 사유하지 못했다. 즉, 형이상학은 ‘존재론적 차이를 망각’함으로써 존재자의 근거로서의 존재(존재자성)를 사유했을 뿐 존재 자체를 그 고유한 진리 속에서 사유하지는 못했고, 따라서 ‘차이 그 자체’를 제대로 사유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근거지움의 인과관계만을 사유하려고 하는 태도는 모든 것을 자신의 구미에 맞게 장악하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두지 않고 부단히 조작하고, 지배하려는 태도의 밑바탕에는 바로 형이상학적인 의지가 놓여 있는 것이다.
특히 근대적 사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런 의지와 단호히 결별하고 새로운 차원의 미래적 사유의 본질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물음의 행위를 ‘초연한 내맡김’ 속으로 인도되도록 해야 한다. 초연한 내맡김 속에서 자연은 말 그대로 저절로 그렇게(自然) 남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가벼움과 빠름의 각축장이 되어가고 있는 이 시대에 새로운 사유의 틀을 제시하고 있는 하이데거의 저작을 읽어나가기에는 상당한 느림과 무거운 긴장감이 요구된다. 그러나 대안적 사유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이로부터 도피해서는 안 될 일이다.
모두가 어렵다고 인정하는 하이데거의 저작이 이렇게 살아 있는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온 것은 언어에 대한 역자의 거듭된 고민의 결과일 것이다. 더구나 상당한 분량의 역자 해제는 깊이 있는 이해를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사유의 길을 걷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주요용어의 색인 작업이 병행되었더라면 하는 점이다.
▼'동일성과 차이'/ 마르틴 하이데거 지음/ 신상희 옮김/ 민음사/ 313쪽/ 1만3000원▼
이병철(한국학술협의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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