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은 남성성을 상징한다. 그런데 여성인 그에게서 나는 그러한 남성적인 열정을 느낀다. 또 여성적인 감미로움도 가득히 전해온다.
이런 것은 ‘조화’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오행의 큰 원리 중 하나는 바로 ‘조화’다. ‘조화’라는 것은 자연을 구성하는 다섯 요소(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 상호간의 조화를 뜻하기도 하지만 어느 한 편의 일그러짐이나 넘침을 꺼리는 ‘고르(게 하)다’의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어린 세대의 구미만을 자극하려는, 그리고 그들의 귀에 최대한 익숙한 리듬으로 우려내고 또 우려내어 진미를 잃어 가는 요즘의 대중 가수중 하나인 김현정에서 이런 조화의 원리를 본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지닌 양성적인 인간은 21세기가 지향하는 인간상이다. 굳이 페미니즘의 논의를 빌리지 않아도, 고착화되고 이데올로기화 된 성의 정체성이 인간에게 하나의 억압이고 굴레라는 것은 이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상식이다. 그러기 때문에 양성적 인간은 자유롭고 독립적 개체의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에 비춰 김현정을 본다면 그는 매우 섹시한(상업적인 의도로 포장되었다 할지라도) 매력과 함께, 여자로서는 장대한 기골(?)에 남성적인 카리스마마저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또 그가 1집부터 3집까지 부른 노래의 가사를 보자.
‘남겨진 미련도 없지만 모두 니가 가져버려’(그녀와의 이별)
‘내 앞에 다신 나타나지마 이젠 누구도 믿지 않겠어’(되돌아온 이별)
‘이건 나 아닌 누구도 이해못해 내 용서를 바라지마’(〃)
‘안돼 니 맘대로 나를 떠날 수 없어 끝낸다면 내가 끝내 기억해’(멍)
‘다 돌려놔 너를 만나기전에… 너 누굴 사랑한다면 너 같은 사람 꼭 만나기를’(〃)
여느 대중가요처럼 김현정도 남녀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루지 못하는 사랑에 대한 애절함이나 비애를 표현해왔던, 혹은 남성에게 구애하는 식의 가사에서 벗어나 남성을 질타하고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수운(水雲), 증산(甑山)과 같은 근대의 한국의 선현들은 ‘개벽’을 말씀하시었다.
선천의 묵은 천지의 질서가 끝나고 신천지(新天地)로 탈바꿈되면서 인간이 주체가 되어 창조의 자리에서 조화의 선경 세계를 열게 된다는 것인데, 이를 ‘문화 문명개벽’이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과거의 낡고 편협한 의식구조와 삶의 방식을 깨부수고 인간 정신을 새롭게 열어야 한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 개벽, 정신 개벽’이 된다. 인간의 의식혁명과 마음개벽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기반이 되는 것이다.
후천(後天)의 세계가 정치나 경제, 혹은 권력에 의해 유지된다고 하나, 나는 ‘문화’에 의해 주도된다고 본다. 문화의 힘은 상극(相剋)의 세상에서 상생(相生)의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상극의 세계가 폭력적이고, 전투적인 남성성의 세계였다면, 상생의 세계는 서로 포용하는 여성성의 세계가 될 것이다.
◀ 댕기동자 김민경씨
나는 특히 가수 김현정에게서 포스트모더니즘적 특성이 현상화돼 있다는 동질적 연대감을 갖는다. 세간의 사람들은 나를 청학동의 ‘댕기동자’로 기억한다. 그러나 지금의 나의 모습은 예전과 판이하다. 그리고 지금 내가 종사하고 있는 일 또한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다(지금도 고전적인 교육활동을 하고는 있다고 하지만).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댕기동자’로 남을 것이지만 그 댕기는 이제 ‘디지털댕기’인 것이다.
상생의 시대는 과거와 현재가 서로 화해하고, 남자와 여자가 서로 화해하고, 동양과 서양이 서로 화해하고, 종교와 종교가 서로 화해하고 남과 북이 서로 화해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안에 타자(他者)를 담을 수 있을 때 진정으로 가능하다. 남성도 여성성을, 여성도 남성성을 자기 내부에 담을 수 있어야 한다.
가수 김현정이 그러한 시대를 열어가는 상징의 하나라면 지나친 표현일까? 문화의 중요한 한 가름인 대중 가요의 선두에 있는 김현정에게 그러한 상징성을 부여한다면 본인에게는 지나친 부담일까?
◇ 댕기동자 김민경씨 약력
전남 순천 태생(31). 전북 남원과 구례, 지리산 청학동의 서당에서 21세까지 한학 공부. 97년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졸업. 현재 인터넷 광고마케팅사인 애드 디지털의 웹 개발 팀장. 한학 교육 컨텐츠 개발 중.
■ 김현정의 말
"고리타분할 줄 알았는데 통하는게 있네요"
댕기동자 김민경씨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그렇지만 그는 나를 한눈에 알아본 듯하다. 나는 한 사람의 내면에 여성성과 남성성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 한쪽이 두드러진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마추어 메탈 밴드 활동을 하면서 거의 남자처럼 지내기도 했다. 남동생한테도 형같은 누나로 통하고 한때는 오토바이 마니아였다.
어떤 분들은 나의 이런 면을 모른 채 매우 여성스럽다고 한다. 그 말도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양성의 모습은 나뿐만 아니다. 내 주위의 친구들에게서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즉 요즘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하나의 성 역할로 묶는다는 게 낡은 생각같다. 댕기동자는 서당에서 한학을 했으니까 고리타분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대화를 할 수 있어 반가웠다. 후천 개벽이니 수운, 증산 선생 등에 대해서 전혀 모르지만 뭔가 젊음으로 통하는 게 있는 것 같다. 댕기 동자가 어떤 직업을 갖든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자신만의 철학을 정진해나가는 게 멋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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