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순정만화에는 여느 장르 못지 않은 짜임새 있는 내러티브와 누선을 건드리는 섬세한 감성이 살아있는 작품이 많이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대표적 순정만화를 2회에 걸쳐 소개한다. 순수한 감정, 꾸밈 없는 애정을 담은 순정만화와 함께 가을에 푹 젖어보시길.》
◇황미나 '굿바이 미스터 블랙'
순정만화계의 대모로 불리는 황미나의 대표작. 뒤마의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다. 친구의 배신으로 누명을 쓰고 유배된 주인공은 에드워드라는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미스터 블랙이란 이름으로 복수를 꿈꾼다. 유배지에서 만난 꾸밈 없는 소녀 스와니와 결혼한 그는 결국 탈출에 성공해 새로운 인물로 태어나 복수에 성공한다.
복수심을 가슴에 품고 탈출의 기회만을 꿈꾸는 미스터 블랙. 남편의 사연은 아무 것도 모른 채 다 쓰러져가는 통나무집을 갖게 돼 기뻐하는 스와니.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일지도 모를 꿈 같은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의 모습과 복수가 끝난 뒤 괴로워하는 주인공을 통해 독자들은 복수와 용서와 행복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을 것이다. 미스터 블랙이 사랑하게 되는 두 여인 '스와니'와 옛 약혼녀 '마리로렌'을 비교하며 보면 더 흥미롭다.
다만 검은머리 냉미남의 1대라고 볼 수 있는 미스터블랙의 캐릭터가 다소 전형적인 것이 흠이다. 잘생기고 똑똑하고 모든 여인의 흠모의 대상이 되는 순정만화의 남자주인공에게서 비현실성을 느낄 남성독자가 꽤 될 것 같다.
◇강경옥 '현재진행형'
한국 순정만화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 강경옥의 학원물.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 때문에 컴플렉스를 갖고 있는 여고생 선영. 이혼한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한상규. 두 사람의 청소년기를 그린 만화다. 자신이 뛰쳐나온 힘겨운 현실 속으로 다시 들어가 힘차게 살아가는 선영이의 모습이 희망을 준다.
이런 선영이의 모습을 보고 상규는 부모님이 계신 미국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며 선영에게 선택권을 준다.
상규 "객관식으로 문제를 낼게. 나는 미국으로... ①돌아간다 ②그대로 있는다. 골라봐"
선영 "미국에는 네가 해결해야할 문제가 있는거지? 오늘 나처럼 넌 지금 도망쳐 나온거지...? 빌어먹을 1번이야..."
이 "빌어먹을 1번이야"라는 대사로 만화팬들에게는 잘 알려진 이 작품은 유치하지 않고 간결한 대사와 감정표현이 돋보인다. 성인독자보다는 청소년층에 공감을 얻을만한 설정이다.
◇김혜린 '불의 검'
영화 '비천무'의 원작자로 유명한 김혜린의 역사물. 청동기 부족 아무르가 신흥 철기 부족 카르마키에게 정복당하는 시대가 배경. 산 속에 숨어 살던 아무르 소녀 아라는 기억을 잃은 남자 산마로를 구하게 된다. 행복하게 결합하는 듯하던 두 사람은 카르마키의 습격을 받게 되고 아라는 수하이 바토르에게 끌려간다. 아라를 구하러 가던 산마로는 카르마키의 여사제장 카라의 공격으로 기억을 되찾지만, 아라와의 시간들은 잊어버리고 마는데….
'불의 검'에서는 '비천무'보다 한층 더 성숙해진 여성 캐릭터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사랑하는 님에게서 잊혀지고 적의 아이를 낳으면서도 삶을 사랑할 줄 아는 여주인공 아라와 미워할 수 없는 악녀 카라, 자신의 사명을 지키기 위해 개인적인 감정을 다스리는 신녀 소서노의 서로 다른 운명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더 재미있는 작품이다.
소서노의 대사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자이니라"를 마주하다 보면 과연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하고 반추하게 된다. 현재 9권까지 출간. 후속편이 오래동안 안나오는 것이 안타깝다.
◇김미영 '야! 이노마'
단순하지만 귀여운 사고뭉치 중학생 노마, 살짝 미쳤지만 예쁘고 순수한 광년이, 노마의 충실한 친구인 삐꾸. 세 명의 캐릭터가 시골 학교에서 일으키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이노마, 광년이 캐릭터의 이름부터가 특이한데다 큰 눈에 긴 속눈섭, 마구 풀어헤친 머리를 한 광년이의 그림만으로도 독자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예쁘고 공주 같은 그림에 거부감이 있는 남성독자라면 이 만화가 마음에 들 것 같다.
이밖에 화려한 그림체와 흥미있는 줄거리가 특징인 만화가 원수연의 알콩달콩 사랑이야기 '풀하우스'와 감성적이고 깊이 있는 그림으로 매니아층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 김진의 고구려시대 이야기 '바람의 나라'도 볼만한 작품이다.
방혜영<동아닷컴 기자>luc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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