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는 엘리자베스여왕의 즉위 당시를 '부도 직전'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여왕은 역시 난세의 지도자였다. 즉위하자마자 개혁에 착수해 먼저 신구교간의 종교적 갈등을 해결하고 의회와 타협해 왕권을 안정시킨 뒤 화폐개혁으로 인플레이션을 잡는다. 그리고 영국을 위협하는 스페인과 전면전을 피하고 해적선장 드레이크를 이용해 해상 공급로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스페인함대를 무력화시키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평생 줄을 선 구혼자들을 물리치고 끝까지 결혼하지 않음으로써 처녀여신이라는 이미지를 간직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프랑스와 스코틀랜드 왕통의 제임스1세에 왕위를 계승시켜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한다.
원칙과 도덕을 중시하는 계몽군주와 타협과 술수에 능한 마키아벨리형 군주, 엘리자베스1세는 45년 치세동안 필요할 때마다 이 두가지 얼굴을 적절히 사용했고, 그가 죽었을때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나라가 돼 있었다.
또한 엘리자베스1세는 명연설가요 뛰어난 문장가였다. 이 책은 여왕이 남긴 말과 글, 당시 역사가들의 기록을 통해 500년전에 살았던 뛰어난 지도자의 모습을 생생하게 복원해낸다.
대관식때 사용한 반지를 손가락에서 빼내 높이 치켜들고 "영국을 남편으로 두었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여왕. "나를 왕의 지위에 올려놓은 것은 신이지만, 여러분의 사랑을 받으며 통치할 수 있었다는 것을 나는 내 왕관의 영광으로 간주한다."
이처럼 멋진 연설을 할 수 있는 여인에게 매료당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16세기 영국의 여왕이 21세게 리더들에게 주는 교훈은 시대를 뛰어넘는다.
김현미<동아일보 신동아부기자>khmzi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