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육체는 예술의 영원한 탐구대상

  • 입력 2000년 10월 13일 18시 52분


정신분석에서 육체는 나르시시즘의 대상이지만, 종교적 금욕주의자에게는 정신적 완성의 적이다. 육체는 바로 이런 양극단 사이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쾌락의 주체인 동시에 대상일 뿐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고통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

미국 예일대 석좌교수 및 휘트니 인문학 센터 소장을 역임한 저자는 육체가 예술의 중요한 대상으로 떠오른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문학 텍스트와 미술 작품 속에서 육체의 문제를 탐색한다.

저자는 육체가 무엇이냐를 정확히 정의 내리는 대신 육체가 왜 그리고 어떻게 상상되었고, 특히 근대 이후의 서사물에서 중심 테마가 된 까닭을 밝히려 한다.

“육체는 의미의 원천이 되는 동시에 중심이고, 육체를 서술적 의미의 주매개로 삼지 않고는 이야기의 서술이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저자에 따르면 예술에서 육체는 항상 호기심의 대상이며, 영원히 그치지 않는 탐구의 대상이다. 이 육체는 18세기에 이르러 서사물인 소설이 번성하면서 매우 근대적 의미로 다가오게 되고, 19세기에는 특히 사실주의 전통에서 육체의 문제가 다뤄진다.

“그의 눈은 그녀 눈동자의 깊숙함 속에 길을 잃어버렸다. 그 속에서 그가 본 것은 수건으로 머리를 싸매고 잠옷 단추가 풀어진 자기 자신의 상반신 모습이었다.”

플로베르의 ‘보봐리 부인’에서 샤를 보봐리가 자신의 모습을 묘사하는 이 구절은 사실주의에서 아는 것이란 곧 보는 것이며 재현이란 곧 묘사임을 잘 보여준다.

역시 19세기에 유럽을 탈출해 ‘열대의 아틀리에’를 찾아 타히티에 갔던 고갱은 성적인 본능에 충실한 타히티 여인의 금빛 육체를 화폭에 담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19세기부터 시작된 중요한 변화는 남성 중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여자의 육체’에서 나아가 남성을 포함한 ‘육체’ 자체에 대한 다양한 관심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육체야말로 모든 상상력의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글쓰기의 대상으로서의 육체, 이 육체는 바로 상상력의 제일차적 관심사일 뿐 아니라 모든 형이상학적 탐색이 궁극적으로 회귀하는 실체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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