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안 스피커에서도 오후의 가을빛 같은 선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따금 잠겨가다 솟구치듯 현악합주가 대기를 휘감았고, 클라리넷이 그 위에 아늑한 무늬를 그렸다. 호른이 꿈결처럼 시선이 끝나는 먼 곳을 보얗게 맴돌았다.
'콘도미니엄의 DJ도 나와 같은 느낌을 가졌던 모양이지'라고 생각했다. 6번국도를 지나 홍천으로 들어서면서 내내 듣고 있던 선율도 그랬기 때문이다. 따스한 중음역을 맴도는 현악, 먼 추억을 향해 달리는 클라리넷, 부유하는 호른…. 그러나 두 음악의 작곡자는 서로 꽤 다른 시간과 공간속에서 활동한 사람들이었다.
공원에서 흘러나온 음악은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1987)이었다. 차에서 들은 음악은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1908) 3악장이었다.
최근 미국 유럽에서는 '밈'(meme)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유전자(gene)와 의미(meaning)의 합성어다. 90년대 초반 생물학자 도킨스는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책에서 유전자가 생물의 몸을 빌어 자기확산의 의지를 펼쳐나간다고 말했다.
그는 책 말미에 '의미소(意味素)인 이론, 의미, 감정 등도 텍스트의 몸을 빌어 자기확산한다는 점에서 유전자와 유사하다'고 말하며 이렇게 확산되는 의미소를 '밈'이라고 명명했다. 강력한 유전자가 온세상에 퍼지는 것처럼 강한 (매력있는) 의미소는 세상에 퍼져나가고, 허약한 밈은 자취없이 사라져버린다.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와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이 텍스트 구조상 비슷하다는 것은 라흐마니노프가 그것을 창안했다는 뜻도, 유재하가 표절음악가였다는 뜻도 아니다. 그 말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채우고 있던 의미소들이 직간접의 경로로 80년 뒤 유재하의 음악에 가득 흘러들어가 있다는 뜻이다. 그 경로는 무엇이었을까.
미국의 유명 영화음악가인 존 모체리는 오늘날의 '말러 신드롬'을 영화음악과 의 관계에서 분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코른골트 등 말러의 제자들이 히틀러를 피해 미국으로 대거 망명, 영화음악가로 변신했고, 영화음악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은 결과적으로 말러음악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게 됐다는 얘기다. 일리가 있는 얘기지만 나는 20세기 영화음악이 말러보다는 라흐마니노프에 빚진 바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의 제자들이 직접 영화음악가가 되지는 않았지만, 피아노협주곡 2번을 비롯한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헐리우드 영화에 직접 혹은 모방의 경로를 통해 풍성하게 이용되었다. 지금 영화관에 걸려 있는 감상적 애정영화의 사운드 트랙을 빼내 '의미소 게놈 프로젝트'를 실시한다면 말러의 밈, 라흐마니노프의 밈, 강력한 대중음악의 밈 들이 그 안에 발견될 것이다.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한 유재하가 라흐마니노프를 개인적으로 좋아했을 수 도 있지만, 그가 영화음악의 텍스트를 깊이 공부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음악은 한 곡 한 곡이 낱낱으로 존재하는 것 만도 아니다. 모든 음악 작품은, 다른 예술작품이 그런 것처럼 여러 의미소의 축적이다. 블루스에서 시작되는 대중음악의 긴 계보가 없다면 랩음악도 튀어나올 수 없었던 것 처럼, 클래식 음악의 풍요한 자산이 없다면 우리가 아름다운 영화음악에서 눈물샘을 자극받을 수도 없을 것이다.
<유윤종 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