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沙鉢通文(사발통문)

  • 입력 2000년 10월 17일 18시 36분


鉢―밥그릇 발 煽―부추길 선 寃―원통할 원 播―퍼뜨릴 파 褓―보자기 보 魁―우두머리 괴

전혀 알지도 못하는 개인이나 회사에서 메일이 오는가 하면, 어떻게 알고 보냈는지 個人의 신상정보까지 파악해 보내오는 편지들도 있다. 不特定 다수에게 무작위로 보내는 광고성 내용이거나 어떤 주장을 일방적으로 알리기 위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옛날에는 그것이 매우 힘들었다. 일일이 뛰어다니면서 전달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방법에 이른바 ‘通文’이라는 것이 있었다. 조선시대에 성행했던 것으로 대체로 어떤 事案(사안)을 널리 알리는 데에 사용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의견을 떠본다거나 問議(문의), 辯明(변명), 非難(비난)하는 내용도 있으며 勸誘(권유)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여론형성을 위해 煽動(선동)까지 하는 경우도 있었다. 宣祖 25년(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晋州(진주)에 사는 儒生(유생) 300여 명이 通文을 돌려 義兵을 일으켜 倭賊(왜적)을 방어하기로 하는가 하면 때로는 집단민원의 성격도 지녀 地方官의 去就(거취)에 영향을 끼친 적도 있다.

또 民亂(민란)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는데 東學革命(동학혁명) 때 全奉準은 각지에 通文을 보내 호응을 誘導(유도)하기도 했으며 후에 그가 체포되자 이번에는 東學徒들이 敎祖의 伸寃(신원)을 위해 通文을 이용하기도 했다.

대체로 알리고자 하는 내용과 함께 발송범위가 함께 기록되곤 했는데 全國 8道에까지 傳播(전파)되는 것도 있었다. 대체로 10일 정도가 걸렸다고 하는데 기동성이 뛰어났던 褓負商(보부상) 등을 이용하면 삽시간에 傳播되기도 했다.

그러나 肅宗(숙종) 이후 通文이 성행하면서 集團民願(집단민원)이 자주 일게 되고 결국 국정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자 조정에서는 함부로 通文을 보내는 것을 금하기도 했다.

沙鉢通文은 民亂을 꾀할 때 主謀者(주모자)를 알 수 없도록 여러 사람이 連名(연명)을 하면서 사용했던 방법에서 유래되었다. 그냥 連名할 경우, 대체로 最初로 記名되는 자가 首魁(수괴)로 지목될 수 있다. 따라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크고 작은 두 개의 同心圓(동심원)을 그린 다음 그 사이에 방사형으로 여러 사람이 連名했던 방법이다. 마치 사발을 엎어놓은 모양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역시 東學軍이 東學革命을 決議하면서 보냈던 通文 第1號가 있다. 청와대 내부에서 금연을 권장하는 沙鉢通文이 있었다는 보도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 중국문화)

478sw@emai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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