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비좁은 집이 아닌 병원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는 일이 일반화되고 있다.
최근 장례식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상제(喪制) 중심 장례문화’의 등장이다. ‘상제는 불효자나 죄인’이란 관념이 사라진 것이다. 수염도 못 깎고 세면을 못해 지저분한 행색의 상제는 요즘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장례 기간 내내 밤새 곡(哭)을 하느라 목이 쉬는 상제를 보기도 어렵다. 몸이 불편한 삼베옷을 대신해 검은 양복과 넥타이가 상제복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변화를 배경으로 장례식장들은 앞다퉈 상제를 위한 편의시설을 제공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1994년 상제들이 따로 쉴 수 있는 간이수면실을 처음 만들었다. 7월초 개장한 한양대병원 장례식장도 빈소마다 상제 전용휴게실을 설치했다. 이곳에서 부친상을 치른 박재식(朴載植·35)씨는 “조문객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히 쉴 수 있어 피곤한 줄 몰랐다”고 말했다.
20일 문을 여는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은 국내 최초로 상제가 피로를 풀 수 있는 개별 샤워실과 침대는 물론 화장실까지 마련해 장례기간 중 상제들의 불편을 최소화했다. 또 가족들이 모여 추모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가족실도 준비했다.
조문객들도 달라졌다. 대부분 조문을 마치고 30분∼1시간 정도 머물다 돌아간다. 술 마시고 화투를 치며 밤을 새우면서 빈소를 지키는 일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화장(火葬)을 치르는 경우도 크게 느는 추세다. 서울시 노인복지과가 서울 시내 71개 장례식장을 조사한 결과 1∼9월 2만2167건의 장례 중 46%가 화장을 택했다.
인터넷시대에 발맞춰 ‘사이버 빈소’도 등장했다. 해외나 지방 등 멀리 떨어져 있어 직접 조문이 힘든 경우 인터넷을 이용해 ‘사이버 문상’을 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강북삼성병원은 7월1일부터 사이버 분향소를 운영하고 있다. 고려대 안암병원도 사이버 조문은 물론 전화통화가 어려운 지인(知人)에게 상주가 전자우편을 보내 부음을 전할 수 있게 했다.
장례기간은 5일장, 7일장이 거의 사라지고 3일장이 대부분이며 부의금은 10년전 평균 1만원에서 3만∼5만원으로 올랐다.
사회 일각에서는 요즘 장례식이 너무 편의주의로 흘러 통과의례적 격식만 차리고 성의가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입관(入棺)한 뒤 죽은 부모의 얼굴 좀 보자고 관을 열어보는 자식이 거의 없습니다.가족이나 지인끼리 슬픔을 나누고 조용히 망자(亡者)를 기리는 모습도 없고 조문객도 서둘러 ‘눈도장’을 찍고 바로 돌아가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27년 전부터 장의사 일을 해온 한국장례문화연구회 연구위원 한면우(韓冕愚·57)씨의 얘기다.
<이호갑기자>gd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