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本 貫 (본 관)

  • 입력 2000년 10월 19일 18시 47분


本 貫(본관)

貫―본관 관 籍―호적 적 徵―거둘 징

賦―구실 부 優―나을 우 劣―용렬할 열

이미 姓氏(성씨)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姓이 옛날 중국 모계사회의 산물로 本流(본류)에 속한다면 氏는 부계사회의 산물로 支流(지류)라고 했다. 戰國時代(전국시대) 이후부터는 그냥 姓으로 불렸으며 秦始皇(진시황·기원전 220년) 이후부터는 平民도 姓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이와 함께 중국에서는 魏晉(위진)시대 이후 문벌귀족사회가 확립되면서 각 群별로 대표적인 가문이 출현하게 되었는데 이를 ‘群望’(군망)이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 陝西(섬서) 李氏, 太原 王氏, 汝南(여남) 周氏 등이 그들이다.

우리나라에서 姓이 출현한 것은 물론 중국의 영향이다. 唐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입했던 삼국시대 후기의 일로 물론 平民은 아직 姓이 없었다. 통일신라 이후에는 唐나라와 더욱 밀접한 접촉을 가지면서 官名, 人名이 중국식으로 바뀌게 되어 金春秋(김춘추), 崔致遠(최치원) 등과 같은 姓名이 나오게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중국엔 없는 本貫이라는 독특한 것이 있다. 姓이 비롯된 지역이나 始祖(시조)가 살았던 거주지를 뜻하는 것으로 貫籍(관적), 姓貫(성관), 貫鄕(관향), 鄕貫(향관)이라고도 하며 흔히 ‘本’이라고도 한다. 중국의 群望에서 그 유래를 찾는 이도 있으나 성격은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本貫制度가 출현한 것은 고려 초 太祖가 신분질서와 徵稅(징세), 賦役(부역), 流移民(유이민)의 정착 등 효과적인 통치를 위해 전국의 郡縣(군현) 명칭을 바꾸면서 姓과 함께 부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곧 일정한 지역에 일정한 씨족을 거주하게 함으로써 통치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그러다 조선시대에 오면 천민을 제외한 모든 계층에서 本貫을 가지게 되었는데 세종실록 지리지에 의하면 당시 郡 이상의 本貫이 무려 530여개, 그 이하까지 합치면 1500개가 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처럼 행정구역명칭에서 일방적으로 따왔던 만큼 그 크기와 本貫을 대등시하는 풍조가 일어 本貫을 바꾸는 자도 많았는가 하면, 행정구역의 통폐합으로 本貫의 수도 많이 줄게 되었다. 또 신분질서가 엄격했던 당시 本貫 자체가 家門의 優劣(우열)을 상징하는 것으로 다시 변질되어 血族(혈족)간의 유대를 강화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배타성을 띠게 되었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없지 않다. 다음은 ‘同姓同本’에 대해 설명하겠다.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478sw@email.hanyang.ac.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