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이 지구상에는 5000에서 6000가량의 언어가 있는 걸로 추정되고 있다. 정보전달이나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언어의 이와 같은 엄청난 다양성은 인류가 넘어서야 할 장애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언어란 단순한 커뮤니케션의 도구일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언어는 역사를 등에 짊어지고 있는 언어공동체와 무관할 수 없는 것이므로, 언어공동체없이는 결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는 아이덴티티의 고리이기도 하고, 그 자체가 문화이며, 또한 세계관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렇게 본다면, 수억의 언어 인구를 가지고 있는 대언어이든, 수백명의 언어 인구밖에 없는 조촐한 언어이든, 언어들 사이에 우열을 가릴 수는 없다. 언어가 다양하다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증오해야 할 해악이 아니라 오히려 참된 의미에서 인간적인 세계의 존재를 알려 주는 증거인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리제이션’은 이러한 언어의 다양성을 아주 귀찮은 현상으로 단정한다. 우리가 흔히 간과해 버리는 것이지만, 시장경제와 정보혁명의 깃발을 내걸고 있는 ‘글로벌리제이션’에는, 언어와 문화의 다양성을 파괴하는 폭력이 비장되어 있다. 지금은, 예전과 같은 정치적 경제적 제국주의만이 아니라, 문화제국주의 더 나아가서는 언어제국주의가 이 지구상을 뒤덮고 있다는 것도 우리는 확실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언어제국주의란 무엇인가’는,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작년 10월에 도쿄에서 열렸던 국제 심포지움을 정리한 논문집이다. 이 책에는 일본과 프랑스를 대표하는 사회언어학자인, 다나카 가츠히코와 루이―쟝 까르베, 그리고 ‘언어제국주의’라는 저서를 통하여 커다란 논쟁을 불러 일으킨 바 있는 로버트 필립슨 등의 논문이 실려 있다. 이 책은, 오늘날 화제가 되고 있는 영어제국주의뿐만 아니라, 일본과 프랑스의 구식민지 제국의 언어정책에까지 시야를 넓힘으로써, 언어제국주의라고 불리는 현상을 역사적인 두께 속에서 파악하려 시도했고, 또 그 시도는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다언어주의, 언어적 인권, 언어 헤게모니, 크레올 등의 다양한 각도에서 언어제국주의에 대한 다면적인 고찰이 이루어진 것도 이 책의 가치를 높이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 특히 로마, 이누이트 등의 민족이 주위의 대언어에 동화되지 않고 어떻게 살아 남았는지를 다룬 논문은, 근대사회를 자명한 것으로 여겨 왔던 거만한 논리에 의문을 던지고 있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로마와 이누이트는 지금까지 ‘짚시’, ‘에스키모’로 불려 온 민족을 가리키는데, 사실 이들 명칭은 외부에서 일방적으로 붙여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들의 민족어에 의한 이름인 ‘로마’, ‘이누이트’로 이들을 호칭해야 마땅하다. 이처럼 소수 민족이 스스로의 언어로 자립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언어제국주의의 폭력과 위협에 저항할 수 있는 가장 힘있는 보루를 또 하나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연숙 (히토츠바시대교수·사회언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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