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책]'철갑경찰' 만화처럼 황당한 의경이야기

  • 입력 2000년 10월 20일 19시 16분


■ '철갑경찰 1'/ 이상언 지음/ 304쪽 7500원/너와나미디어

“왜 의경 지원하기로 했어요?”

“월드컵, 사회 나와서 보려고요. 영장 나오기 기다렸다간 내년에나 군대 가거든요.”

2001년 서울 신촌. 자메이카 유학생의 레게 댄스에 맞춰 시위대가 춤춘다. 중대장은 스타크래프트 전략에 따라 진압명령을 수행한다. 한 중대원은 플루트를 불며 먼 옛날 진압봉 한 자루로 머리가 셋 달린 드래곤을 무찌른 전설의 의경을 예찬한다. 황당하다? 바로 작가의 의도가 그것이다.

의무경찰 출신의 이상언 (24)이 본디부터 세 권짜리 장편소설을 쓸 생각은 없었다. 만화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용맹정진했지만 만화 실력이 늘지 않자 미리 구상한 줄거리를 하이텔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폭발적인 조회수에 힘입어 책으로 묶여나온 것이 ‘철갑경찰’이다.

만화적 상상력의 액션과 개그가 상상의 화면을 가득 수놓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만화가 되기는 아깝다! 또는, 글로 묶기를 잘했다. 왜? 문장으로 풀어낼 수 밖에 없는, ‘시점(視點)바꾸기’와 ‘거리두기’의 묘미가 각별하기 때문이다.

‘옆에 서 있던 다른 의경의 등짝이 터지면서 피가 솟구쳤다. 용납할 수 없는 저급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패러디였다’ 라며 스스로의 장면묘사를 전복시키고, ‘주인공은 이름을 모두 외우고 있었지만 작가로선 누가 누군지 모르는 엑스트라성 의경들이 모두 한마디씩 던졌다’라며 시점을 분리시키는 산뜻함. 프랑스 ‘누보로망’의 모방도,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의 패러디도 아닌 작가 몸에 꼭맞는 발랄한 개그 그 자체다.

80년대 ‘시대의 아픔이자 비극’으로 인식됐던 전경 부대가 코미디의 무대로 등장한데서부터 ‘진지함의 해체’로 특징지워지는 신세대 문화의 특징이 뚜렷이 드러난다. 연세대 종합관 점거사건 비디오와 유명배우 포르노 테이프가 전경들의 대화속에서 혼선을 빚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하물며 “우리가 김정일로 알고 있는 인물이 사실은 존 트라볼타이고, 6월15일 북한 인민들이 흔들고 있었던 것은 사실은 아르마니 하계 기획상품 스카프였다”라는 데서야.

‘1976년 봄, 소년으로 탄생하고 1994년 봄, 소년에서 남자로 변신한’ 작가는 아직도 만화가가 되지 못했지만 잘 나가는 게임 기획자로 활동중이다. 출근하면 인터넷 남성혐오 사이트에 접속해 글을 읽으며 명상에 잠기거나 의경 동호회 사이트에 접속해 게시물을 보고 게시물을 올리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주업무? 국정원이나 해외 테러정보 사이트를 돌며 게임 줄거리를 구상하는 것이란다. 2,3권도 곧 출간 예정.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