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찬의 밀레니엄담론]외규장각 도서 '상호대여'라니?

  • 입력 2000년 10월 23일 18시 50분


“조선국왕이 프랑스 신부를 잔혹하게 살해한 날은 곧 조선국 최후의 날이 될 것입니다. 며칠 뒤 조선 정복을 위해 출정할 것입니다. 조선을 정복해서 국왕을 책립하는 문제는 프랑스 황제의 명령에 따라 시행할 것입니다.”

1866년 대원군이 천주교를 탄압하며 프랑스인 신부들을 포함해 천주교도 수 천 명을 처형하자(병인사옥) 프랑스 공사대리 H D 벨로네가 청나라 정부에 보낸 서한이다.

화도 났을 것이다. 자기 나라 백성들을 죽이고 천주교마저 능멸했으니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왔어도 탓할 수만은 없다. 제국주의 시대에 그 정도도 안 해서는 나라 체면도 안 섰을 것이다.

◇꼭 필요하면 복사본이면 돼◇

그렇다고 남의 문화재를 약탈하고 그것도 모자라 불태워 버리기까지 한 일(병인양요)은 아시아의 ‘야만족’도 아닌 점잖은 서양의 ‘문명국’이 할 짓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 그 약탈 문화재를 ‘장기 대여’ 방식으로 돌려주겠단다. 1993년 경부고속철도 기종 선정을 앞두고 미테랑 대통령이 ‘상호교류와 대여’ 방식의 ‘반환’을 약속한 후 7년을 끌어 온 일이다. 프랑스에 있는 외규장각 도서 297책 중 절대 내놓을 수 없다던 유일본 64책을 내놓기로 한 점은 일단 협상의 진전이다.

그러나 약탈해 간 문화재를 장기대여 형식으로 가져오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문화재를 프랑스에 장기대여한다는 것은 굴욕적 ‘교환’일 뿐이라며 비분강개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것은 제국주의의 침탈을 정당화하고 해외 문화재 반환에 나쁜 선례를 남긴다는 것이다.

사실, 반환이든 교환이든 그저 몇몇 관계자의 합의로 돌아와 박물관 구석에 처박힐 것이라면 외규장각 도서는 돌아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따지고 보면 지금 프랑스국립도서관의 좋은 시설에서 잘 보관되고 있는 것을 서둘러 가져 올 이유도 없다. 조선시대 연구에 그렇게 시급히 필요한 것이라면 우선 복사본이나 들여오도록 하면 될 일이다.

조선후기 실학자 안정복은 그의 저서 ‘동사강목(東史綱目)’ 서문에서 “역사가의 임무는 계통을 밝히고 찬탈과 반역을 엄중히 비판하며 시비(是非)를 바로잡고 충절(忠節)을 떨치고 제도와 문물을 자세히 밝히는 것”이라고 했다.

내세의 영생 대신 후손에 의한 현세의 역사 계승을 믿고, 신의 심판 대신 역사의 평가를 두려워하며 살아 온 게 우리 민족이다. 역사의 준엄한 심판은 개인의 삶과 사회 운영의 엄정한 지표가 된다. 외규장각 도서의 문제는 도서의 반환보다 훨씬 복잡하게 얽힌 130여 년의 역사를 푸는 문제다. 도서 반환의 협상 창구를 1인 대표제로 한 것이 논란을 줄이고 협상을 빨리 진행하려 한 것이라면 방향을 잘못 잡았다. 이는 제국주의 침탈의 역사와 부끄러운 우리의 근대사를 직시하며, 숱한 문화재와 함께 현대사를 방치해 놓고 있는 우리의 역사의식을 질타하며 떠들썩하게 풀어갈 문제다.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와야◇

역사는 미래를 보는 거울이다. 인간은 현재 속에서 과거의 짐을 지고 미래를 바라보며 살아간다.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말했듯이 어떤 한계가 있음을 알면서도 미래를 예측하려 노력하는 것이 역사가다. 과거를 방치한 채로는 백 년도 못 사는 인간의 무지와 오만에 미래의 전망이 가려지기 마련이다.

반환이야 앞으로 7년이 더 걸리든 70년이 더 걸리든 상관없다. 그 과정에서 한국인과 프랑스인이 ‘역사의 힘’을 배운다면 그것은 어디에 있든 사료적 역할을 충분히 하는 셈이다. 그 과정은 왁자지껄하게 논쟁을 벌이며 모두가 역사를 배우는 요란한 퍼포먼스여야 한다.

김형찬(철학박사)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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