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책꽂이]동서양 넘나드는 '美學의 화해'

  • 입력 2000년 10월 27일 18시 47분


“학문이란 비교하는 것이야.” 우리 학계에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선비이신 국악학자 이혜구 선생님. 그 어른께서 언젠가 역시 같은 학문의 길에 들어선 손녀딸에게 해주시던 말씀 중에 내가 운 좋게 귀동냥한 말이다.

내가 그분의 경지에 도달하려면 아직도 너무나 먼 길을 달려가야 하겠지만, 나 자신 늘 무언가를 비교하며 학문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 약간의 희망을 품어본다. 개미사회와 인간사회를 비교하고 동물의 행동에서 인간의 본성을 찾는 작업을 하며 하루해를 보낸다. 때론 비교하고 있는 대상간의 거리가 좀 지나친 듯싶지만 비교는 늘 보다 뚜렷한 정체성을 낳는다.

이 같은 비교학의 진수가 중국 런민(人民)대학교 철학과 장파(張法) 교수의 저서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에 도도하게 펼쳐져 있다. 서양의 미학(美學·aesthetics)이 일찍부터 학문의 틀을 갖춘 데 비해 동양의 미관(美觀)은 언뜻 체계를 갖추지 못한 것처럼 보이나 사실 거의 모든 학문에 고루 녹아들어 있다는 관찰로 시작한 그의 비교는 미의 주체에 대한 동서양의 개념은 물론 미를 감상하는 방식의 차이에까지 이른다.

그는 서양의 미가 피타고라스의 수에 기초하는 분석적 실체라면 동양의 미는 음양오행에 기초하여 신(神)과 기(氣)를 다루는 ‘정체공능(整體功能)’의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런 본질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미학의 기원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두 음악에 있음은 무엇을 뜻하는가.

바야흐로 논리의 시대를 거쳐 또다시 감성의 시대로 접어드는 요즈음 동양과 서양의 ‘감성의 과학’ 즉 미학을 비교하여 ‘화해(和諧)’를 끄집어내는 작업만큼 보람있는 일이 또 있을까. 나와 겨우 동갑내기인 그가 어떻게 동양과 서양의 미학 세계를 그처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의 학문은 충분히 깊고 넓어 그 표현이 결코 독설적이지도 않고 편파적이지도 않다. 그저 잔잔하게 파격적일 따름이다.

다만 서양의 학문을 너무 지나치게 변증법(dialectics)의 그늘 아래 쓸어버리는 것 같아 조금 불편하다. 서구의 화해가 오로지 대립물간의 투쟁의 결과로 나타난다는 평가는 좀 지나치게 큰 붓으로 그어버린 느낌이다. 음악학을 하는 아내의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지만 러시아의 사상가 박틴(Mikhail Bakhtin·1895∼1975)의 이론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 나라에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이른바 ‘대화법(dialogism)’은 엄연한 변증법의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장파 지음/유중하 외 옮김/584쪽/2만 3000원/푸른숲▽

(서울대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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